'하얀거탑','이산' 거쳐 '솔약국집 아들들'서 활약
한상진 "대중이 원하는 배우가 되고싶어요"
하마터면 그는 이름 석 자 한번 알리지 못하고 사라진 배우가 될 뻔했다.

2000년 SBS 공채 탤런트 9기로 출발했지만 그는 눈에 띄지 않는 조ㆍ단역으로 이 작품, 저 작품을 전전하다 2006년 미국에 이민을 떠나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미국으로 떠난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MBC TV '하얀거탑' 제작진에게서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

"연기는 다시 안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민을 떠난 것이었는데 그 전화 받고 바로 다시 귀국행 비행기를 탔어요.(웃음) 물론 오디션에 붙는다는 보장은 없었죠. 하지만 그 작품에 꼭 출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빠박이'라는 별칭으로 통했던 '하얀거탑'의 '박건하'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그 작품 덕에 그는 MBC '이산'의 '홍국영'을 만나 마침내 스타덤에 오를 수 있다.

현재 KBS 2TV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셋째 아들 '선풍'으로 활약 중인 한상진(32)의 이야기다.

"'하얀거탑'의 박건하는 정말 목숨 걸고 연기했습니다.비중이 그리 큰 것도 아니었지만 제가 그 원작을 좋아하기도 했고 김명민이라는 걸출한 배우와 함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었습니다.그 작품 덕분에 명민 형을 연기의 멘토로 삼게 됐어요."

한상진은 "'하얀거탑' 끝나고 작품 섭외가 계속 들어와 솔직히 '이제는 됐구나' 싶었다.그런데 '이산'의 홍국영에 캐스팅되기까지 다시 네 차례의 진땀 나는 오디션을 보면서 정신을 차리게 됐다"며 웃었다.

'이산'의 홍국영은 한상진이 데뷔 7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한 역할이다.

두뇌회전 빠른 패기 넘치는 지략가 홍국영의 캐릭터는 한상진과 찰떡궁합을 이뤘고 촌철살인의 대사는 매회 화제가 됐다.

"지금 보면 홍국영은 한상진이 아니에요.내 능력으로 절대 연기할 수 없는 역할이었어요.주변에서 다 만들어주신 덕분이고 다른 사람들이 내게 에너지를 주셨기에 가능했어요.사실 붕 뜨는 느낌에 오만방자해질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사극이라 쟁쟁하신 선배님들이 많이 계셔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상진 "대중이 원하는 배우가 되고싶어요"
'이산' 이후 캐스팅된 영화 '29년'과 드라마 '대물'의 제작이 무산된 것도 돌이켜보면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상승의 속도감에 취하기 쉬운 시기에 적당히 호흡을 조절하고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가지게 한 것.
그렇게 해서 만난 것이 '솔약국집 아들들'의 선풍이다.

명석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방송국 사회부 기자이지만 못난 외모와 융통성 없는 성격 탓에 여자 친구 한 번 사귀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풍 역을 맡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인물이에요.명석하지만 30대 초반이 되도록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보고, 첫 키스 한번 못해본 순진한 남자인데 특이하면서도 정감이 넘치잖아요.무엇보다 홍국영의 이미지가 강해 어떻게 지우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선풍이를 맡으니까 홍국영 얘기는 쏙 들어갔어요.그만큼 요즘은 완전히 선풍이가 돼 살고 있습니다."

초반에 10㎏을 찌우는 등 실제로 외모에서 망가지려고 노력한 그는 그러나 고된 촬영 탓에 5~6㎏이 금세 빠졌다.

"힘들어서 살이 빠졌는데 요즘은 먹어도 다시 안 찌더라고요.그런데 극 초반에 선풍이는 못생긴 남자라는 설정을 강조하다 보니 이제는 제가 살이 빠져도 외모에서는 여전히 못난 것으로 비치는 것 같아요.(웃음)"

그와 함께 손현주, 이필모, 유선 등의 활약으로 '솔약국집 아들들'은 방송 2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한상진은 "팀워크가 아주 좋다.특히 매번 녹화 날에는 변희봉, 백일섭, 김용건 등 어르신 선배님들이 꼭 후배들과 다 같이 점심을 먹는 자리를 마련하시는데 실제로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오랜 무명 기간을 거쳐 어렵게 현재의 자리에 오른 한상진은 "트렌드에 민감한 배우, 대중이 원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산' 때 이순재 선생님께서 배우는 항상 트렌드에 맞게 자신을 계발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당신이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고 하시면서요.대중과 소통하는 직업인 만큼 배우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대중을 따라가지는 않더라도 항상 대중과 호흡하고 눈을 맞추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이제 조급함은 없어요.어떻게 하면 진짜 연기를 할 수 있을까만 고민합니다.어딘가에는 나를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준비가 돼 있으면 언젠가는 때를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이제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끼며 어떤 역을 맡든 '저 역할은 한상진이 딱이야'라는 소리를 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