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이 안정을 찾고 있다. 한때 달러당 1600원대까지 치솟았던 환율이 1200원대로 내려왔고,한국의 국가 위험도를 나타내는 지표들도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이처럼 '한숨 돌린' 지금이 바로 위기의 원인을 되돌아보고 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점검해 볼 때라고 생각된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1997년에 이어 두 번째다. 10여년 사이에 두 번의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는 아마도 한국이 유일하지 않은가 한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두 위기의 원인이 같다는 것이다. 두 위기는 모두 은행이 단기 외채를 진 것이 원인이 되었다.

1997년 은행이 단기 외채를 지게 된 것은 자본시장 개방에 있어서 순서를 지키지 않고 단기자본 시장을 먼저 개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기 후 처리 과정에서 장기자본 시장을 먼저 개방하고 단기자본 시장을 나중에 개방하는 원론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자본시장을 다 개방했다. 그것이 10여년 후 다시 단기 외채 때문에 위기를 맞게 되는 상황으로 나타난 것이다.

97년 위기 후 자본시장을 무차별 개방하면서 '보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민간의 위험 관리 능력과 정부의 금융 감독 능력을 키운다는 보완 조치가 취해졌다. 외화 보유고를 더 쌓는 것도 물론 중요한 보완 조치였다. 그러나 그런 조치들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은 몸집 키우기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위험 관리가 뒷전으로 밀렸다. 그것은 개별 은행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 행태를 제어하는 것은 감독 당국의 몫이지만,감독 당국은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외화 준비금이 늘어난 덕분에 큰 탈은 안 났지만,잘못하면 97년처럼 외채를 못 갚는 사태가 올 뻔했다.

따지고 보면 한국같이 '관치'가 뿌리 깊은 나라에서 감독 능력이 단기간에 생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97년 위기 전 단기자본 시장이 먼저 개방된 것은 공무원이 감독에 대한 개념도 없으면서 외자 도입 때마다 권한을 행사하고자 했던 것이 주 원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위기 후 '개혁' 조치는 결과적으로 오히려 후퇴를 가져온 셈이다. 감독 기구를 민간 기구로 출발시킨다고 했지만 공무원이 장악하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에게 감독 권한을 넘겨 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앞으로 외환위기가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우선 외화 준비금을 더 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적으로 밑지는 장사다. 97년 위기 이래로 전개되어 온,외국인은 한국에서 두자릿수 이익을 올리는데 한국은 주로 금리 1~2%짜리 미국 재무부 증권을 쌓는 구도가 더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보다 더 바람직스러운 것은 감독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당연히 금융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서 '관치'를 어떻게 청산하느냐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정권 초기 관치 청산을 기치로 들고 나오더니 지금은 공무원에게 '포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기야 당장 쓸 수 있는 인재는 역시 공무원밖에 없을지 모르지만,민간에서 인재를 공급받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몇 건 시도한 뒤 접어 넣었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만약 관치를 개혁할 자신이 없으면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단기자본 통제를 도입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국 단독으로 통제했을 때 급격한 외자 유출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국제 공조를 추진할 수도 있다. 현 세계 정세를 보면 그런 주장에 동조할 나라가 적지 않을 것이다. 때마침 G20의 멤버도 되었으니 한국이 그런 일에 앞장설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