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해본 사람은 안다. 안팎 양면으로 입을 수 있어 좋다는 리버서블(reversible) 점퍼를 사도 실제론 한쪽으로밖에 못입는 수가 많다는 걸.자주 입는 쪽의 목 둘레나 소매 끝이 닳거나 더러워지는 통에 뒤집어 입기 어려운 탓이다. 결국 욕심내다 돈만 더 쓴 꼴이 되기 일쑤다.

다양한 용도를 미끼로 소비자를 유혹하지만 알고 보면 그 복합성이 별 필요 없는 건 리버서블 의류에 국한되지 않는다. 작은 컴퓨터나 다름없다는 3G 휴대폰이나 만능 쿠커라는 고가 전기밥솥도 알고 보면 괜히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사치품에 불과한 수가 수두룩하다.

영상폰의 쓰임새가 아무리 많아도 나이든 사람들은 전화 걸고 받는 외에 다른 기능은 잘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쓰는 일이 거의 없다. 값 비싼 전기 압력밥솥 역시 밥 외에 떡과 찜 등 별별 걸 다 만들 수 있다지만 밥솥을 밥 짓고 보온할 때 말고 사용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제품마다 신기술을 강조한 부가 기능을 넣는 게 대세더니 근래엔 핵심 기능만 강화하고 나머지는 뺀 '디버전스(divergence,탈 복합)' 제품이 뜬다는 소식이다. 이것저것 좋다며 추가해 값을 올린 것보다 꼭 필요하지 않은 기능은 생략해 가격을 낮춘 단순 제품이 인기라는 것이다.

2G휴대폰과 넷북(미니노트북)처럼 사용자에 따라 기본적인 용도만으로 충분한 정보기술(IT) 제품에서 시작됐지만 점차 칫솔 치약 세제 제습제같은 생활용품으로 퍼진다고 한다. 실내 건조 전용(세제),혀 클리너(칫솔),치아미백(치약)같은 본래 기능과 크게 상관없는 요소는 제거한다는 얘기다.

불황의 여파라지만 실은 추세 변화일 수 있다는 연구보고도 나왔다. 기업들이 그간 추구해온 다기능 제품의 경우 소비자들이 이것저것 파악하느라 힘든,이른바 기능 피로를 일으켜 오히려 구매 회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앞으론 더하기보다 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조각가 최종태씨(77)는 좋은 작업의 첫째 요건으로 '적당히 손 떼기'를 꼽았다. 미련을 못버리고 뭔가 보태려 자꾸 주물럭거리기보다 얼추 손을 뗌으로써 군더더기를 줄여야 수작(秀作)이 된다는 것이다.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더하려 기를 쓰면 쓸수록 누더기가 되고 말 수도 있는.가끔은 빼기와 생략의 가치에 주목해볼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