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소중한 사람은 하늘에서도 아쉬운가. 그래서 늘 아름다운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가. 자신에게 닥친 모든 불행 앞에 당당했던,그럼으로써 몸이 불편한 사람은 물론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에게 희망이란 축복을 안겨줬던 장영희 교수(57 · 서강대)가 세상을 떠났다.

장 교수는 한국 번역문학의 태두로 여겨지는 고(故) 장왕록씨의 딸.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문학자 겸 번역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폭넓고 섬세한 고전문학 해설 및 삶에 대한 관찰이 돋보이는 수필로 사라졌던 문학의 힘을 되살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삶은 안타까움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한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가 자유롭지 못했음에도 불구,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강단에 섰는가 하면 거듭된 암 선고에도 굴하지 않고 집필과 강의를 계속한 게 그것이다. 남달리 공부에 매달리게 된 계기를 그는 이렇게 털어놨다.

'중학교를 가야 하는데 어느 학교에서도 입학시험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 학교 저 학교 찾아다니며 제발 입학시험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애원하셨다. 이런 상황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할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육체의 기능이 떨어지니 머리로 내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

공부로 이 세상에 발 붙여야 하는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던 그는 암 치료조차 또 다른 공부로 받아들였다. '병에 걸리고 나서부터 나는 몰랐던 사실을 열심히 공부한다. 내 몸이 얼마나 소중하며 무엇보다 나의 아픔을 통해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마음을 배운 것이다. '

자신이 문학을 통해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법을 결정짓고 힘을 얻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문학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고 길을 찾고 그럼으로써 더욱 굳건하게 살아갈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던 그가 남긴 또 다른 글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병원에서 우리의 화제는 누가 어떤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지,누가 어떤 자리로 승진했는지,정치권의 아무개는 왜 그런지,누구 자식이 어느 대학을 갔는지 등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한다. 예컨대 어떤 산이 더 좋고 어떤 책 어떤 영화가 더 재미있는지 등에 대해 얘기한다. 무엇보다 오늘을 함께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배운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