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교환방정식에 따르면 통화량에 화폐유통 속도를 곱한 숫자는 물가에다 실질소득을 곱한 숫자와 같다. (Mv = py) 이때 돈이 도는 속도(v)가 어느 정도 일정하고 실질소득(y)도 주어진 기간 내에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다고 하면 물가(p)와 통화량(M)은 비례한다. 돈 찍으면 결국 물가가 뛰는 것이다.

채권을 다른 말로 고정소득 증권이라 한다. 받을 돈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플레가 발생하면 화폐의 실질구매력이 감소하게 된다.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인플레는 그래서 채권보유자에게는 독약 같은 현상이다. 명목소득의 실질가치를 줄여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권을 발행해 재정적자를 보전하는 정부가 통화량을 증가시켜서 인플레를 발생시키면 국가채무의 실질가치가 줄어들면서 정부는 이익을 보게 된다. 정부가 인플레를 일으켜서 정부부채의 실질가치를 줄이는 경우 이를 인플레세금(inflation tax)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미국의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발생한 글로벌 임밸런스 현상이었다. 이 같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오일머니가 되어 중동으로 유입되고 중국의 엄청난 흑자가 되어 중국의 대외자산을 2조달러대까지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덕분에 중국의 발언권은 자꾸 커졌고 중동국가의 위세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리먼 파산 이후 미국은 통화를 풀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본원통화는 작년 3월 8259억달러이던 것이 금년 3월 1조 6431억달러로 1년 만에 두 배가 되었다. 리먼 파산 이후 금융경색을 타개하려고 중앙은행이 시중은행 보유 채권을 매입해주는 바람에 잉여지준이 늘어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본원통화가 두 배 증가했지만 화폐의 유통속도가 느린 바람에 물가는 아직 본격적으로 상승하고 있지는 않으나 시장이 정상화되어 유통속도가 회복되면 그동안 찍은 돈의 힘으로 인해 인플레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이 경우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인플레세금을 걷을 수 있게 된다. 미국채권의 실질가치 감소는 고스란히 미국 정부의 이익이 될 것이며 2조 달러 가까운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다.

또한 최근 미국은 녹색성장전략을 통해 재생에너지나 대체에너지 개발을 추구하면서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동국가에 막대한 오일머니가 축적되면서 이 중 일부가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세력에 대한 지원자금이 되는 것을 보면서 장기적인 녹색성장 전략을 통해 중동국가들의 위세를 꺾는 효과까지 노리고 있는 것이다.

2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는 작년 위기국면에서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막상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은 미국과 체결한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였다. 오죽하면 2000억달러보다 300억달러의 힘이 더 세다는 지적이 나왔겠는가. 외환보유고를 무조건 늘리는 것보다는 적정한 수준을 보유하되 기축통화 발행국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미리 체결해 놓는 것이 훨씬 더 비용도 싸게 들고 효과도 클 수가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솝우화 한 토막.멧돼지가 송곳니를 바위에 날카롭게 갈고 있자 지나가던 여우가 왜 별일도 없는데 법석을 떠냐고 빈정댔다. 그러자 멧돼지가 대답했다. "적이 안 보일 때 송곳니를 날카롭게 갈아놓아야지 적이 보이면 이미 늦은 거야".

위기가 서서히 걷혀가는 지금 인플레의 위험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인플레로 인한 달러자산의 실질가치 감소분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이를 위해 에너지와 자원을 포함한 실물자산 축적전략 등 할 일이 많다. 적이 보이기 전에 각종 대비를 서두를 때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