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자가용'이 한 대 생겼다. 아버지께서 사주신 '삼천리 자전거'가 그것이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30리길.걸어서 통학하기엔 너무 멀고 버스도 드문드문 다니는 바람에 형편이 어려운데도 사주신 것이다. 나는 자전거 덕분에 김천중 · 고교를 6년간 개근할 수 있었다.

그때 모교의 자전거 통학은 전국에서도 유명했다. 2000명 가까운 중 · 고 전교생 가운데 7할 이상이 자전거로 통학했으니 말이다. 교문 앞 보관소에 수많은 자전거가 일렬로 늘어선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날마다 자전거로 통학하니 팔다리와 심폐 등 온몸이 튼튼해지고 균형 감각도 길러졌다. 나는 지금도 내 건강이 그때 자전거로 통학하며 다져진 것으로 믿고 있다.

훗날 나는 젊은 나이에 진짜 자가용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지금까지 승용차의 안락함에 젖어 자전거를 까맣게 잊었다. 그런데 이제 자전거가 추억 속에서 걸어나오더니 기세 좋게 내달리고 있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에 따라 최근 다시 떠오른 것이다.

자동차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폐해는 심각하다. 세계의 기후 축을 뒤흔들어 가뭄과 홍수가 극심해지고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이대로 지속되면 2030년까지 지구 생물의 3분의 1이 멸종한다고 한다. 실제로 빙하가 녹아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는 바람에 물 속으로 사라지는 나라도 있다. 대탈출이 시작된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돼지우리에서 생기는 메탄가스조차 연료로 사용할 궁리를 하고 있다니 눈물겹다.

정부도 저탄소 생활화를 촉진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지난달 20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자전거가 녹색 성장의 동반자"라며 자전거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를 계기로 정부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핵심은 올해부터 2018년까지 전국적으로 3114㎞의 자전거도로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3일까지 전국 지자체와 공동으로 '대한민국 자전거 축전'을 열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면 건강이 좋아지고 주차난과 교통 체증을 동시에 해소할 수 있다. 또 에너지를 절감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으며 공기도 맑아진다.

"삶이 지나치게 빠르다고 생각하면 페달을 밟자.우리 아이들에게 숨 쉴 공기를 주고 싶다면 페달을 밟자." 자전거 선진국 네덜란드의 남부 도시 델프트시가 자전거 타기 활성화 캠페인 문구로 내세운 구호다. 소원이 있다면 자전거 일주 도로가 빨리 완공돼 더 나이 들기 전에 아버지를 추억하며 3114㎞의 대장정을 마치는 것이다. 다음 주말에는 세상사 훌훌 집어던지고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2인용 자전거를 타고 추억 속의 김천,아카시아꽃 향이 아련한 방천길을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