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의 지난 40년 역사는 그야말로 영욕(榮辱)의 역사다. 1960년대 말~70년대 초 당시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에 따라 국민의 세금으로 하나둘씩 출범한 공기업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일꾼이었다. 철강 통신 건설 전력 항만 방송 등 민간으로선 투자하기 버거운 대규모 사회 인프라 구축을 전담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끈 초석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부터 공기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민간 기업들이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해 급성장 가도를 달릴 때 공기업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지며 후진적인 경영관행을 답습해왔다. 이 때문에 공기업 최고경영자가 바뀔 때는 예외없이 '낙하산 인사'라는 단어가 등장했고 '방만 경영'은 공기업들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여기에다 민간 기업보다 많은 연봉과 최고의 복지혜택을 누리면서 구조조정 걱정도 없어 '철밥통'이니 '신(神)의 직장'이니 하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런 공기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다시한번 환골탈태를 요구받고 있다. 이미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3.6%(2007년 말 기준)에 달할 만큼 비대해진 상황에서 공기업 개혁 없이는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정부도 공기업 선진화 작업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보고 대대적인 혁신에 나서고 있다.


◆환골탈태 요구받는 공기업

정부는 이미 6차례에 걸쳐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으며 중간점검의 자리로 지난 4월18일에는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70여개 주요 공기업 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강도 높은 변화를 요구하며 개혁 작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뜻을 강하게 밝혔다. 이 대통령은 "민간기업 CEO들은 밤잠을 못 자고 있는데 여러분은 부도날 염려도 없지 않느냐"며 "공공 기관장들은 맡은 조직을 스스로 개혁하고 잘할 자신이 없으면 물러나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떠나라는 최후통첩이나 다름없다. 워크숍에 참석한 한 공기업 CEO는 "대통령의 경고 메시지를 받은 기관장들은 하나같이 착잡한 심정이었다"며 "다소 느슨해졌던 개혁의지를 곧추세우는 계기로 삼았다"고 말했다.


◆공기업 개혁 방향

정부는 작년 8월부터 강도 높은 공기업 개혁에 돌입했다.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통합 등 유사 공기업 통 · 폐합(41개 기관→16개 기관),129개 공공기관 2만2000명 단계적 인력 감축(전체인력의 12.7%),산업은행과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24개 공기업 민영화 등이 그동안 내놓은 대책들이다.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고삐를 당기고 있다.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최근 공기업 워크숍에서 "지금부터 공기업 선진화 2기에 들어간다"며 핵심과제로 △3대 거품(보수,직급과 조직,사업구조) 빼기 △노사관계 선진화 △일류서비스로 진화 3가지를 제시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공기업 선진화 계획이 인원 감축 등 외형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앞으로의 공기업 선진화는 임금 체계 조정과 노사관계 선진화 등 질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공기업이 경제살리기 첨병으로 변신

공기업들 스스로도 선진화 2기를 맞아 과거의 공기업 색채를 완전히 벗어던질 참이다. '空기업'이란 비아냥까지 들었던 공공기관이 이제는 경제살리기의 첨병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우선 경제위기 극복에 앞장서기 위해 공기업들 스스로 몸집 줄이기를 실천하는 등 고통 분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많은 공기업들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민간이 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업 영역을 공격적으로 개척해나가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국내 농수산업을 미래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해외시장에 우리 농산물을 수출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한식 세계화 작업에도 앞장섰다. 한국동서발전은 기존 전력산업에 안주하지 않고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조류발전과 바이오가스 등 신 · 재생에너지 사업에 도전해 국내에 없었던 새로운 시장을 만들 계획이다. 신 · 재생에너지 분야에만 향후 10년간 5조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한국전력은 에너지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도 추진 중이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