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기회인가 위기인가 (下)] 위기 뒤 준비하는 도요타…185조원 쌓아 놓고도 감원
도요타자동차가 과장급 이상 관리직 약 9000명의 올해 상여금을 작년보다 60% 깎기로 최근 결정했다. 지난달 노사가 합의한 일반 직원(생산직 포함)의 상여금 삭감폭 26%(평균 186만엔)의 두 배 이상이다. 올초엔 국내외에서 총 6000명의 직원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한 뒤 즉각 해고를 단행했다.

반면 글로벌 시장에서 도요타와 경쟁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환율 효과'가 사라진 이후 도요타가 본격적인 역습에 나설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발톱 감춘 도요타 '역습' 채비

도요타는 올해 인건비를 포함한 고정비용을 전년보다 10%(약 5000억엔,6조7500억원) 삭감할 방침이다. 임원 상여금은 아예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작년 말엔 화장실 휴지까지 절약키로 하는 비용절감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도요타가 유례없이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나선 표면적인 이유는 다음 달 8일 발표할 2008회계연도(2008년4월~2009년3월) 결산실적에서 3500억엔가량의 적자를 냈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하지만 연구개발 투자 등을 위한 준비자금 성격의 내부 유보금이 12조3000억엔(약 185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경기침체를 계기로 '군살 제거'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유동성만도 1조7000억엔(23조원)을 웃돈다.

도요타의 유보금은 초우량기업 삼성전자 총자산(93조4000억원)의 두 배 수준이다. 수천억엔의 적자를 몇 년간 지속해도 끄떡없을 정도의 거액을 쌓아 놓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 공산당은 "도요타와 같은 대기업이 내부유보금 1%만 써도 비정규직 40만명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도요타는 과거 엔저 호황을 거치며 발생한 생산시설 및 인력구조 거품을 이번에 확 걷어내겠다는 전략이다. 구조조정을 몰아쳐 근로자들의 임금인상과 주주들의 배당확대 요구를 잠재운 건 덤으로 얻은 효과다.

도요타는 불황을 계기로 뱃살을 빼고 재도약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얼마 전엔 파나소닉과 손잡고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의 심장 격인 리튬이온전지의 효율성 향상을 위한 신재료 개발에 착수했다.

◆현대차,생산성 못 높이면 도태

반면 현대차는 지난 1분기 매출 및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각각 26.4%,70.9% 하락했는데도 인력 구조조정은커녕 임금을 오히려 올려줘야 할 판이다.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는 24일 울산공장에서 열린 임금 및 단체협상 상견례 자리에서 월급여 8만7709원(기본급 대비 4.9%) 인상과 총 고용보장,월급제 정착 등을 요구했다.

현대차 생산성은 도요타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 회사의 신차 1대당 조립시간(HPV)은 2006년 기준 31.1시간(국내공장 기준)으로 도요타(22.2시간)보다 1.4배나 더 걸린다. 1인당 생산대수 역시 29.6대로,도요타(68.9대)의 43% 수준이다. 현대차 국내 공장의 편성효율(각 생산라인별 인력배치의 최적화 상태)은 도요타(93%)에 한참 못미치는 60~70% 정도다.

문제는 현대차의 생산성이 2003년 이후 꾸준히 악화돼 왔다는 점이다. 정희식 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편성효율이 낮다는 것은 공장에서 불필요한 여유인력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며 "전환배치를 통해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내부적으로는 생산성 향상과 함께 친환경차 투자를 집중,도요타를 제칠 기회를 엿본다는 전략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도요타가 구조조정을 완료하기 이전에 충분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놓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조재길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