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할 수 있으면 회사의 모든 것을 걸겠다"고 말했다. 철학적 사고와 논리력이 경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무려 2억대 가까이 팔린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의 매혹적인 디자인도 대학 시절 수강한 서예강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잡스는 털어놨다. 인문학 지식과 소양이 그를 '창의적 경영자의 대명사'로 올려놓는데 힘이 됐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하버드 프린스턴 등 미국 주요 대학들이 기초학문을 중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학 사학 철학을 비롯 수학 화학 등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소양과 논리적 사고를 갖춘 다음 로스쿨 비즈니스스쿨 등에서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체계다.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 기초학문 지식이 두고두고 자양분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문학을 경영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포스코가 사내에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부장급 이상 간부들에게 정기 수강하도록 의무화했다는 소식이다. 논어 맹자 등 고전에서부터 문학 사학 철학 고고학까지 인문학 전 분야다. 세계적 기업으로 크기 위해선 인문학 지식과 실무 능력을 두루 갖춘 '통섭(統攝 · 지식의 통합)의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준양 회장의 설명이다.

기업 CEO들 사이에 불고 있는 인문학 공부 바람도 여전하다.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삼성경제연구소의 조찬강좌 '메디치21',한국능률협회의 동서양 고전 강의 등에 수강생이 넘쳐나고 있다. 사교와 인맥 다지기에 몰두하던 과거와 달리 '열공' 분위기라고 한다. 서울대의 경우 수업 일수를 채워야 하는 것은 물론 수강생끼리 술이나 골프를 해서는 안된다는 규칙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삼성 사장단도 최근 사장단협의회에서 '몽골제국의 세계 평정'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같은 현상은 기존 경제 · 경영 패러다임이 무너지면서 기업들이 '근본'으로 돌아가 당면 위기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요즘 같은 혼란기에 살아남으려면 경영학 기법 보다는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우리 기업들이 '인문학 경영'을 통해 유례없는 불황을 극복하고 창조적 경영의 새 길을 찾아낼지 주목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