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에 1년 동안 걸어두는 15만원짜리 '1년등'이 많이 줄었어요. 그 대신 절 마당에 거는 3만원짜리 도량등이 그만큼 늘었는데 경제한파로 불자님들 주머니 사정이 어려졌다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 경제에도 빨리 봄이 와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

'한국불교 1번지'로 손꼽히는 서울 견지동 조계사의 한 직원은 17일 이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부처님오신날(5월2일)을 앞두고 지난달 말부터 접수하기 시작한 연등의 숫자가 지난해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사정은 다른 사찰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의 대표적 전통사찰인 봉은사의 경우 넓은 마당에 거는 도량등(5만원)의 접수량이 작년의 80%선으로 줄었다. 이 절 주지 명진 스님이 부임 이후 일주문 밖 출입을 삼간 채 1000일 기도를 하며 수행풍토를 진작해온 데다 사찰재정 공개 등으로 사찰운영의 모범을 보인 덕분에 신도들이 매년 크게 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봉은사 관계자는 "마당등의 접수 상황이 경기를 확실히 반영한다"며 "불황의 여파를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초파일 수입'이 연간 수입의 30~40%,많게는 50%를 넘는 지방사찰의 경우 경제한파의 영향은 더하다.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의 경우 등 수입이 작년보다 20~30%,설악산 신흥사는 50%나 줄었다며 울상이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연등을 다는 마음은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가족의 건강,대입 합격,소원성취부터 극락왕생까지 바람도 다양하다. 이날 조계사에서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꺼내 연등값을 낸 60대 할머니는 "여러가지로 어려운 일이 많아서 마음이라도 좀 편해질까 하고 연등을 달았다"며 희망의 등불이 되기를 기원했다.

연등은 원래 번뇌와 무지로 가득한 무명(無明 · 어두움)의 세계를 밝히는 지혜와 자비의 등불이다. 따라서 등의 크기나 수,등값보다 중요한 것은 등에 담는 정성과 서원이며 탐욕과 분노,어리석음을 없애려는 마음이다.

석가모니 당시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머리카락을 잘라 판 돈으로 간신히 기름을 사서 공양한 등불이 가장 오래 빛을 발했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이야기를 되새겨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