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기업들에 닥칠 위기에 대한 효율적인 대처와 지속성장을 위한 방안으로 사업다각화를 주장하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미래 변화에 대한 위험을 분산시킴으로써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논리이다.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닥쳤을 때 사업다각화가 과연 방패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사업다각화는 양면의 칼과 같다. 사업다각화가 사업부문간 시너지 창출에공헌한다면 위기상황 하에서 분명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사업다각화는 필연적으로 조직운영을 복잡하게 하는데 이는 갑작스런 위기에 대한 대처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GE는 좋은 예이다. 이 회사는 지난 60여년 동안 다양한 사업으로의 확장을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지속성장을 달성해 경영능력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혀 왔다. 하지만 최근 범세계적인 금융위기라는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힌 GE는 다각화된 사업부문 중 하나인 GE캐피탈 때문에 그룹 전체의 생존이 불분명한 지경에 처해 있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많은 기업들이 위기관리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미래의 위험요인에 대한 평가,위험발생 시 대처방법 등을 담은 위기관리전략을 체계적으로 수립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주먹구구식 위기관리에 비해 진일보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위기관리전략은 예측 가능한 위험에 대해서만 대처가 가능하고,최근의 전세계적 경제위기처럼 예측하지 못한 위험에 대해선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약점이 있다. 더구나 예측가능한 위험의 경우에도 체계적인 위기관리전략 수립만으로 위기를 효율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체계적 전략수립은 위기관리를 위한 1차적 조건에 불과하다. 목표달성을 위해선 전략의 정확한 실행이 필요하다. 이때 전략의 정확한 실행을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조직 구성원이다. 조직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와 규범의 집합인 기업문화와 수립된 전략 간 적합도가 떨어진다면 아무리 정교하게 수립된 계획이라도 성공적으로 실행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면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업문화는 과연 어떤 것일까? 분명한 것은 공유가치에 대해 구성원들이 강한 응집력을 가지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 현재 구성원이 공유하는 중요가치가 위기상황 시 신속한 대응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평가하고,나아가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이 판별된 중요가치에 대한 조직구성원의 공유도를 높인다면 위기상황에 대한 효율적인 조직적응력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SK그룹의 SKMS(SK Management System)는 위기상황 극복에 있어서 기업의 주요 가치를 공유하는 기업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79년 고 최종현 회장에 의해 개발된 SK그룹의 독특한 경영기법인 SKMS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은 인간중심의 경영이다. SKMS는 전략 수립과 관련된 3대 중요 가치로서 일관성 유지,유기적 연계,동태적 대응을 들고 있는데,이 모두는 외부환경변화에 대한 조직적응력의 극대화와 관련이 있는 가치다. SK그룹은 이처럼 환경에 대한 조직적응력의 증대를 위한 중요가치를 구성원들로 하여금 공유하게 하고 이를 통해 기업문화를 형성해온 까닭에 SK글로벌 사태 등 예상하지 못한 여러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요즘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기업도 국제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이번 위기는 물론 앞으로 닥쳐올 새로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과연 조직구성원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