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고유의 술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전통술이 있다. 탁주 약주 소주다. 이 가운데 탁주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탁주에서 재(滓)를 제거해 약주를 만들었고 이를 증류해 소주를 얻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탁주는 발효된 뒤 막 걸러낸다고 해서 막걸리로 불렸다. 언제부터 막걸리가 제조되기 시작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고려시대 이규보가 편찬한 '동국이상국집'에 '발효된 술덧을 압착해 맑은 청주를 내는데 겨우 4~5병을 얻을 뿐'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 이전부터 만들어진 것 같다. 일제시대 편찬된 '조선주조사'에는 '대동강 일대에서 처음 빚어지기 시작해 나라의 성쇠를 막론하고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고 기록돼 있다.

막걸리의 맛은 만드는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달고(甘) 시고(酸) 맵고(辛) 쓰고(苦) 떫은(澁味) 맛이 조화돼 특유의 청량감과 감칠맛을 살려낸 것을 최고로 친다. 맛을 결정하는 요인은 숙성기간과 온도다. 요즘엔 대량생산을 위해 섭씨 30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3~4일 정도 숙성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저온에서 100일 이상 숙성해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막걸리는 수난도 많이 겪었다. 식량난을 덜기 위해 1964년 쌀막걸리 제조를 금지한 데 이어 카바이드가 들어갔다고 해서 유해시비까지 일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체 술 소비량의 70%를 차지하던 막걸리는 소주 맥주 양주에 시장을 내주며 한동안 잊혀진 술이 되기도 했다.

그런 막걸리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신세계 이마트의 경우 3월 막걸리 판매가 전년보다 48%나 늘었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신장률이 45~60%에 달했다. 인삼 복분자 구기자 등 지역특산물을 활용한 퓨전막걸리가 개발되는가 하면 복숭아 딸기 키위 등 생과일을 갈아넣은 막걸리까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등지로의 수출도 급증 추세다. 지난 8일엔 막걸리를 문화콘텐츠로 육성하고 수출을 확대하자는 취지의 '친환경 녹색성장 참살이탁주 세계화 선포식'도 열렸다.

막걸리는 오랜 기간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한 '한국의 술'이다. 값 싸면서도 10여종의 필수 아미노산과 단백질,비타민B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세계 각국 사람들의 시름을 덜어주고 기쁨을 북돋는 문화상품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