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를 전후해 중국의 약진이 괄목할 만하다. 정치 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며 독자적 세력으로 솟구쳐 오른 모습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이번 회의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초래한 국제 금융시스템 개혁 문제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였고 기축 통화의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위안화를 기축 통화로 육성하겠다는 속셈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미 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 6개국과 6500억위안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데 이어 대상국과 규모를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금융위기 여파로 외화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고 보면 2조달러의 외환을 보유한 중국으로서는 기회임에 틀림없다.

실제 최근 중국의 영향력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통화 스와프를 통해 위안화 기반을 넓혔고, 기축 통화 개혁론의 대열에 러시아 브라질 등 달러화 부족 때문에 서러움을 겪었던 신흥 강국을 동참시키는 데 성공했다.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는 성격을 띤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중심국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영향력의 범위는 대단히 넓다. SCO에는 러시아 인도 이란 중앙아시아 국가 등 10개국이 회원국 또는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력권이 형성되고 그 한가운데 중국이 서 있는 형국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7000억달러 이상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소홀히 대접하기 힘들다. 오바마 대통령과 후 주석이 미 · 중 정상회담에서 기존의 대화 채널을 격상시키고 양국이 전면적 협력 관계로 나아가기로 합의한 것도 이런 위상 강화를 반영한 것임은 물론이다.

중국이 떠오르면서 미국 일방주의가 쇠퇴하고 다극화 시대가 개막됐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나아가 '팍스 시니카(Pax Sinica ·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 시대의 도래를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13억명에 달하는 인구가 상징하는 풍부한 노동력,두자릿수를 넘나드는 성장률,2조달러에 이르는 외환 보유액,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 자본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대안이 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기엔 걸림돌이 많은 탓이다. 우선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표현되는 중국 체제가 과연 효율적인 것인가 하는 점부터 논란의 소지가 많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실패로 규정되면서 국가 통제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정치와 경제를 한꺼번에 장악하고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는 체제가 더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이념적 측면에서부터 세계를 리드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 이르면서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는 등 내부적 갈등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위안화를 기축 통화로 육성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기축 통화는 국제 거래에서 결제 통화로 활발히 사용돼야 하지만 위안화를 결제 수단으로 선택하는 세계 기업이 얼마나 될지는 낙관을 불허한다. 또 그런 거래를 뒷받침할 만큼 위안화가 국제 시장에 충분히 공급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위안화를 공급하기 위해선 중국이 상당기간 무역 적자,경상수지 적자를 감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중국은 대규모 흑자를 내면서 세계의 여유 자금을 오히려 빨아들이는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이른 시일 내 미국을 대체할 슈퍼 파워로 떠오를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다극화 시대의 문을 열고 그 한 극의 주인이 됐음은 너무도 분명하다. 다극화된 세계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또 어떤 식의 합종연횡이 나타나고 사라질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