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주택가 앞 인도.보행자들 사이를 자전거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곡예 운전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자전거 · 보행자 겸용 도로로 자전거와 사람이 같이 다니도록 지정된 곳.하지만 도로 폭이 2m도 채 되지 않는 데다 가로수 등 장애물이 곳곳에 있어 자전거와 사람이 부딪칠 뻔한 위험한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말이 자전거 도로이지 사실상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서울시의 자전거 · 보행자 겸용 도로는 모두 604㎞,전용 도로는 124㎞에 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전거를 타기 어려운 '무늬만 자전거 도로'인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시민들의 반응이다. 송상엽씨(48 · 송파구 문정동)는 "사람이 다니기에도 비좁은 인도에 자전거 도로 표시가 돼 있어 황당했다"며 "실제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도로가 무슨 자전거 도로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송파구청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와 정부가 예산까지 지원하면서 자전거 도로를 만들라고 하니 성의 차원에서라도 안 만들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서울시 자전거교통추진반 관계자도 "(자전거 도로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는 단계"라며 "그러다 보니 일부 구간의 경우 자전거 통행에 불편이 따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자전거 전용도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관련 기관들 간 협의가 원활하지 않아 추진이 어려운 상태다. 서울시의 자전거 전용도로 설치 계획에 경찰청이 교통 체증과 안전 등의 이유를 들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2월 서울지방경찰청 교통규제심의위원회에 제출된 자전거 전용도로 건설 계획 중 대부분이 재심의 결정이 내려졌거나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기존 도로를 좁혀 자전거 전용도로로 만드는 것을 경찰청이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전거 타기를 적극 권장해 녹색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정부와 서울시의 정책 기조는 맞다. 하지만 의욕만 앞세우다 보면 일선 자치단체에 행정적인 혼란을 초래해 송파구 문정동의 경우와 같은 '무늬만 자전거 도로'를 만들기 십상이다. 보행자도 안전하고 자전거 타는 사람도 큰 불편이 없도록 제대로 된 자전거 인프라 조성에 힘쓰는 서울시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