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를 맞아 영어가 강조되고 있지만 사실은 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청에 접수되는 고소장,탄원서 등의 민원 서류를 보면 6하 원칙에 맞춰 주장 요지가 간결 · 명확하게 정리된 서류는 드물다. 서론이 길거나 감정에 치우쳐 부수적인 사연이 강조되고 주된 내용은 간단히 언급돼 본말이 전도되기 일쑤다. 또 말하고 싶은 핵심 내용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사건 관계인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질문 내용에 대해 동문서답하는 바람에 조사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개인의 생각은 말과 글이란 프리즘을 통해 외부에 투영된다. 말과 글이 아니라면 운명을 개척해 온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열정과 매력에 대해 많은 미국인들이 그토록 열광할 수 있겠는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기관의 정책도 기관장의 설명이나 보도 자료가 없다면 그 내용을 쉽게 형상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우수한 정책도 말과 글을 통한 홍보에 실패하면 여론의 환호를 받기 어렵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말과 글이란 도구를 통해 소통하기 때문에 말 잘하고 글 잘쓰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토론식보다는 암기식 교육,논술식보다는 선택형 평가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세대는 말하고 글 쓰는 훈련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적었다. 최근 대학 등 각종 입시에서 논술평가 방식을 도입하고,구술 면접을 강화하는 등 능력 배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전반적인 말하기와 글쓰기 실력은 아직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은 것 같다.

법조인의 글인 판사의 판결문이나 검사의 결정문,변호사의 변론 요지서도 점차 나아지고는 있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검사의 경우 전국 어디에서 활동하든지 전체 검사가 일체로서 활동하는 것과 같아야 하기 때문에 결정문 양식도 통일될 필요가 있다. 과거 범죄인을 기소할 때 작성하는 공소장의 경우 범죄 내용을 표현하는 '공소 사실'은 한 개의 문장으로 작성돼 왔다. 범행 수법이나 내용이 복잡해서 몇 페이지가 되더라도 '피고인은'을 주어로 시작해 '것이다'로 끝나는 한 문장으로 이뤄졌고,또 한자와 일본식 표기가 잔존해 일반인이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올 3월부터 공소장과 불기소장 모두 문법에 맞게 문장을 나누고 쉬운 용어를 사용해 이해를 돕는 '새로운 결정문'이 전국 검찰청에서 시행되고 있다. 해방 후 60여년간 지속돼 온 검사들의 글쓰기 습관을 바꾸는 일이라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검찰 수사의 결정체인 결정문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오히려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

한 나라의 언어는 민족 정신을 담는 그릇이고,개인의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란 말이 있다.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선택한 '새로운 결정문'이 검사의 생각을 담는 새 그릇이 되어 수사의 편의보다는 인권을 먼저 생각하고,모든 궁금증을 쉽게 해설해 주는 국민의 길라잡이로서 자리 매김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