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다시보는 하이에크의 가르침
경제행위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
스스로 질서찾는 '시장' 믿어야
불황의 원인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저금리 정책이라는 데에는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하지만,정책 처방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반면,다른 학자들은 그동안 저금리로 빚어진 잘못된 일을 시장이 교정하고 있으므로 시장의 작동을 방해하는 정부 개입을 경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정책 처방을 둘러싼 견해 차이는 시장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반영하므로 시장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시장은 그야말로 복잡계다. 그러므로 시장의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거론해 그 작동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존재하기 어렵다. 이는 곧 시장과 같은 사회 현상을 다루는 사회과학에서는 관련 변수와 그들 간의 관계에 대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가질 수 없으므로 자연과학과는 달리 변수 간에 함수적 관계가 설정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이 운행되는 원리에 대해 우리가 전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은 아니다. 복잡하지만 스스로의 질서를 가지고 움직이는 시장에 대한 일반적 예측을 의미하는 이른바 패턴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제 상황과 관련해서는 미국 FRB의 저금리 정책에서 비롯된 잘못된 투자가 정리되는 기간인 불황이 지나면 경제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패턴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 지출 증가에 따른 소득의 증가 비율을 의미하는 승수 값이 얼마인지 등은 잘 알 수 없다.
'과학성'을 앞세운 가장된 지식에 따르면 세상을 설계하고 계획하는 행위를 정당화하여 정부 개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정부 개입이 시장의 청산 과정을 돕게 되는 우연이 발생하지 않는다면,정부 개입은 시장의 작동을 방해해 경제의 회복 속도를 더디게 함으로써 불황의 골을 더 깊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저금리 정책으로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과 맞지 않은 투자를 시장이 정리하는 과정에 정부 개입은 자제돼야 한다는 주장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정부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묻히기 일쑤다. 호황기에는 시장이 작동하지만 불황기에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완결성이 없는 반쪽짜리이며 시장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과학성'이라는 이름 아래) 허위로 밝혀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엄밀한 지식보다는,비록 불확실하고 예측이 어렵다는 여지가 있더라도 불완전하지만 참인 지식을 선호한다"고 했다. 신자유주의를 포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세계적으로 힘을 얻고 있는 마당에 지식의 가장과 지적 오만을 경계하는 가르침을 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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