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 경남 · 광주은행이 사실상의 공적자금을 또다시 지원받은 데 대해 이팔성 우리금융회장(사진)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해 주목된다. 1조5000억원의 손실을 낸 우리은행의 부채담보부증권(CDO),신용디폴트스와프(CDS) 투자에 대한 우리금융지주의 자체감사가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어서 발언의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금융은 최근 정부의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우리은행 1조원,우리금융 3000억원,경남은행 2320억원,광주은행 1740억원 등을 지원받았다.

이 회장은 2일 중구 회현동 본사에서 열린 우리금융 창립 8주년 기념식에서 "자본확충과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정부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점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며 "10년 전 공적자금을 받은 데 이어 또 다시 정부 자금을 지원받게 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다시는 이런 과오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결과가 초래된 데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도 적지 않아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분명 우리의 과오도 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교훈을 찾아야 한다"며 "위기를 철저한 자기혁신의 계기로 삼아 내부 문제점을 과감하게 도려냄은 물론 위기 이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더 나아가 "저수지의 물이 빠져야 바닥과 오물이 드러나듯이 어떤 조직도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나서야 그동안 몰랐던 내부의 문제점을 명백하게 인식하게 된다"며 "보다 효율적인 강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자를 문책하겠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문맥이나 동원된 단어의 강도로 볼 때 책임추궁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될 만하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금융계에서는 우리금융 계열사들이 은행자본확충펀드 전체 지원액 3조9560억원의 40%가 넘는 돈을 받을 만큼 급격히 어려워진 이유로 2006~2007년 추진했던 급격한 자산확대를 꼽고 있다.

당시 우리은행의 자산증가율이 20%로 시중은행 평균 13%의 두 배에 육박했던 것이 부실자산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단일 건으로 1조5000억원의 손실이 난 데다 다른 대출자산에서도 작년 한 해 동안 1조6000억원의 충당금을 쌓아야 했고 워크아웃 업체도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게 우리은행의 현 주소"라며 "대내외적으로 책임추궁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우리금융을 대표하는 회장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과거사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는 처지"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분위기를 공격적으로 바꾸고 자산을 늘려 은행 규모를 크게 키운 공로도 크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실 문제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수준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변의 의견"이라며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입장표명을 해야 할 것이고 공적자금 지원에 상응하는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시작된 우리은행의 CDO · CDS 부실에 대한 자체감사는 지난 주말께 마무리돼 현재 보고서 작성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관계자는 "CDO 투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고 그 과정에 위법이나 위규가 없었는지에 대한 백서를 만들어 공개할 방침"이라며 "그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에 대한 문책이 과거 한차례 이뤄진 적은 있지만 손실 규모에 비해 처벌수위가 경미했고 대상자도 소폭이었다는 지적이 많아 이 회장이 고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