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없으니 용서를 할 수도 없습니다.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인데,일본이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 건 언젠가 이런 문제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는 뜻 아닐까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잘가요 언덕》(김재홍 그림,살림)을 발표한 영화배우 차인표씨(42)는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소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응원하고 연민하는 나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번 책 출간으로 배우 외에도 '작가'라는 명칭을 얻게 된 그는 "책은 능력을 갖춘 사람이 가슴으로 생각하고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경우에는 '엉덩이'로 썼다"고 말했다.

차씨가 《잘가요 언덕》 구상을 시작한 시기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캄보디아에서 세월을 보내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후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던 '훈 할머니'의 사연을 접한 그는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소중한 생명으로 태어나 사랑받고 기쁨을 주며 살아야 마땅한 존재가 절대적인 무력에 납치되어 오랜 세월을 잃어버리고 인생의 끝무렵에 돌아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A4용지 기준으로 초고 20장 분량을 썼습니다. "

하지만 배우 생활을 하면서 글을 계속 쓰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컴퓨터가 고장나 원고가 모두 삭제되는 일도 있었다. 아내 신애라씨 등 주변 사람들의 격려로 원고는 조금씩 늘어났지만 완성 속도는 더디었다. 그런데 차씨의 집필 속도에 장남 정민군이 박차를 가했다. "아들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이 원고를 읽어주었습니다. 어느 순간 아들이 소설의 남은 분량을 유심히 보더라고요. 남은 원고가 줄어가니까 점심 시간에 학교에서 전화해 제가 오늘 소설을 얼마나 썼는지 확인하는 무서운 편집자이자 열렬한 독자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

차씨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호랑이 마을을 잘 묘사하기 위해 2006년에는 백두산 현지 답사를 했으며,당시 일본군 계급 체계 같은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자료 조사를 했다. 2007년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나눔의 집을 자원봉사차 방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10여년이 흐른 후 소설은 완성되었다.

《잘가요 언덕》은 1930년대 일본 식민지 시대 백두산 호랑이 마을을 배경으로 엄마를 해친 호랑이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을을 찾아온 사냥꾼 용이와 마을 촌장의 선하고 고운 손녀딸 순이,그리고 순이를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징집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일본군 가즈오의 이야기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