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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 파커(Parker)사는 검은색과 갈색 일색이었던 필기구시장에 빨간색 만년필을 선보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듀오폴드(Duofold)'라는 이름의 이 만년필은 당시까지 생산된 펜 중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완벽한 제품이었다. 가격이 보통 고급 펜의 두 배에 달했지만 여성을 중심으로 놀랄 만한 판매실적을 기록하며 파커의 브랜드 가치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에도 파커는 1945년 당시로는 놀라운 가격인 12.5달러짜리 볼펜 '파커 T-볼 조터(Jotter)'를 내놓으면서 필기구 역사를 바꿨다. 북극지방에 갖고 가서 써도 될 것 같은 튼튼함에 희미한 광택이 나는 고급스러운 케이스는 새로운 필기구 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그때까지 볼펜을 서민적인 필기구라고 생각해왔던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었다. 파커 볼펜이 나오면서 전 세계 국제회의장에서,또는 첨단 오피스타운에서 볼펜이 쓰이기 시작했다. 볼펜이 필기구의 황제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파카사의 설립자인 조지 새퍼드 파커(George Safford Parker)의 회사 설립 당시 신념은 'Make something better and people will buy it.(좋은 제품은 결국 소비로 이어진다)'이었다. 파커는 그만큼 펜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성능과 실용성을 중요시해 왔다.

초기 만년필의 장애물이었던 잉크가 새는 현상을 획기적으로 줄인 첫 번째 특허품 '럭키 커브(Lucky Curve)' 시스템으로부터,현재까지도 전 공정에 걸쳐 수공으로 생산되는 듀오폴드 2008년 컬렉션까지,파커는 초기의 고전적인 우아함과 장인정신을 잃지 않는 자세로 명품 만년필로 명성을 이어 왔다. 완벽을 향한 열정,고객과 장인정신을 우선시하는 파커의 철학은 전 세계 사람들이 만년필 하면 '파커'를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파커 펜처럼 어떤 제품이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는 창업가 정신이다. 파커 펜을 만든 조지 파커는 최고의 소재와 최고의 품질관리를 통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일념으로 회사를 경영했다. 그는 초기 창업 정신을 잃지 말라고 후배 경영인들에게 당부했다.

둘째는 끊임없는 혁신이다. 파커 펜은 시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신했다. 전쟁 때는 그 시기에 알맞은 제품을 만들었고,우주항공 시대엔 그 분위기에 적합한 제품을 내놨다.

총 8만3673t의 호화 여객선 퀸엘리자베스호의 구조물로 만년필을 만든 것도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의 하나다.

퀸엘리자베스호는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총 81만명의 연합군 병사를 실어 날랐다. 이 배가 1971년 퇴역하게 되자 파커사는 이 배의 황동을 구입해 5000개의 만년필을 만들어 팔자 2차 대전에 참전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 펜을 사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셋째는 브랜드 전략이다. 파커는 1987년 이후 소유주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명품으로서의 손상은 그다지 입지 않은 편이다. 기업이 팔려도 브랜드는 살아남아 세계인의 수요를 이끌어내고 있다. 지금도 인터넷 마켓에서는 파커 펜이 끊임없이 거래되고 있으며 역사의 현장에 놓여 있던 파커 펜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누구든 파커 펜을 좋아하는 고객들은 견고성,디자인,펜촉의 느낌 등에서 최고의 만족감을 느낀다고 얘기한다.

한국에도 이런 명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많다.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브랜드를 살리는 일에 힘을 덜 기울이고 있는 편이다. 영국 프랑스가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 명성을 날리던 20세기 초반,이탈리아 중소기업들은 한결같이 이들 나라 기업의 하청을 맡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이탈리아 중소기업들도 이제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으로 다시 시작했다. 지금 의류 가방 액세서리 안경 여행용품 등에서 이탈리아 제품들은 더 이상 하청업체 제품이 아니다. 파커 브랜드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한국의 중소기업들도 차근히 명품으로 향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양승현 기자 yang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