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위 자동차업체인 혼다는 금융위기가 한창인 지난해 말 폭탄선언을 했다. 세계 모터 스포츠 중 최고로 꼽히는 'F1(포뮬라1)'에서 철수하겠다는 것이다. '기술의 혼다' 슬로건을 앞세운 혼다는 그동안 F1을 신기술 경연장으로 활용해왔다. 혼다팀은 세 차례나 우승컵을 차지했다.

혼다 측은 1000명 규모인 레이싱팀 운영에 연간 500억엔(약 7500억원)이 들어가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F1 철수 배경을 설명했다. 혼다는 이달 초 F1팀의 전 단장인 로스 브라운에게 팀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세부적인 계약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팀 규모는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혼다에 이어 일본 1위 경차업체인 스즈키도 올해부터 세계랠리선수권(WRC) 참가를 중단한다. 스즈키 오사무 회장은 "자동차 판매가 줄고 경영 환경이 불투명해 차세대 기술 개발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세계 1위 자동차업체인 도요타자동차는 레이싱팀을 해체하지 않는 대신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올 들어 F1팀에서 수십명의 인원을 내보냈다. 프랑스 르노도 F1 등 자동차 레이스 참가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사실상 파산 상태에 빠진 GM 크라이슬러 포드 등 미 '빅3'는 모터 스포츠 참가 계획조차 못 잡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업계를 위기로 몰고 있는 불황의 파고가 모터 스포츠업계마저 위협하고 있다. 주요 자동차업체들이 F1팀을 매각하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있으며,모터 스포츠 강국인 선진국들은 잇따라 대회 유치를 포기하는 추세다.

프랑스와 캐나다는 2009년 F1 챔피언십 시리즈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회를 열어도 장사가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들 국가의 F1 프로모터들은 한 해 평균 400억원 이상 소요되는 운영 경비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시리즈 참가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업계에서는 자동차 마니아들을 열광시켜 온 모터 스포츠가 예전의 전성기를 되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자동차의 경쟁력은 '속도'나 '파워'가 아닌 친환경 기술력으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속도 경쟁에 매달릴 필요성이 줄어들어 메이커들이 모터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늘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F1의 경우 그동안 강력한 파워 엔진을 개발해 스피드와 고속으로 회전하는 기술을 보여주는 첨단 자동차 기술의 경연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자동차업체들의 F1 철수는 자동차 역사 100년의 변화를 보여주는 증표"라며 "혼다는 향후 경영좌표로 스피드 대신 환경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선진국에서는 자동차 관련 환경규제가 강화되고,휘발유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엔진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생존하려면 환경 기술을 강화해야 하지만 F1은 환경기술 개발이나 마케팅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