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야구팬이었던 필자는 최근 진통 끝에 성사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지상파방송 생중계 결정 과정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대표팀이 지난 1회 대회 때 4강에 올랐고,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기억 때문에 야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중계권 판매업체와 방송사 간 중계권료 문제로 방송 중계가 없다는 뉴스를 접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월드컵 · 올림픽 등 범국민적 관심을 끄는 대회가 아니란 이유로 조정 개입을 거부한 모양이다. 이에 네티즌들이 불같이 들고 일어났음은 당연하다. "16강에도 못 드는 축구 중계하지 말고,세계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야구를 중계하라"는 등 격한 의견들이 줄을 이었다. 결국 대만전이 열리기 하루 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돼 경기를 생방송으로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접하면서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고,'정당한 권리'에 대한 의식도 매우 높아졌음을 새삼 확인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대회를 볼 수 있는 것이 방송 수신료를 내는 국민의 정당한 권리임에도,일반인이 그에 대해 반발한다거나 자신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그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인정돼 받아들여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과거 국가경제의 기틀을 다진다는 이유로 묵살당했던 중소기업의 정당한 권리는 어떤가. 중소기업이 노력한 만큼 생산 제품 값을 제대로 받고,납품대금을 현금으로 받기 위해 몇 십년을 주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국가가 신용을 보증해줘도 은행에 가면 고금리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고,은행들은 왜 중소기업에 부당한 상품계약을 강요하는지도 궁금하다. 외국 유명브랜드에는 낮은 수수료는 물론이고 일부는 매장 인테리어 비용까지 지원하면서,중소기업에는 40%에 달하는 수수료를 부담시키는 백화점의 영업 행태도 정당한 건가.

중소기업이 불합리한 상황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전보다는 많아지고,정당한 권리를 인정하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이 뒷받침된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계 자체의 의식 개선이다. 정당한 권리에 대한 적극적 의견 개진과 대안 제시만이 중소기업을 인정하고 당면과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힘이란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WBC 중계권 문제도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면,평범한 자본주의 논리에 매몰돼 남의 나라 일처럼 다음 날 아침 언론에서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WBC 중계권 문제처럼 산적한 중소기업 현안도 업계의 적극적인 건의와 의견 개진으로 하나하나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