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7월27일 늦은 오후, 파리 북쪽의 한 작은 마을에서 총성이 울렸다. 굉음이 울리는 순간 밀밭에 앉아있던 까마귀떼가 푸른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과 그 위로 비상하는 검정색의 부메랑 형상들이 자아내는 낯선 대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불길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키 큰 밀밭을 헤치고 한 사내가 배를 움켜쥔 채 몸을 비틀거리며 나온다. 피범벅이 된 그의 신체는 누런 밀밭에 붉은색의 자취를 남긴다. 그는 단말마의 고통을 참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지만 바람 한 점 없는 한 여름의 뜨거운 공기는 그의 메마른 기도를 들락거리며 참기 어려운 고통의 칼자국을 남긴다.

◆의사 가셰의 치료 받으러 이주

사내는 밀밭 근처의 마을 공동묘지를 지나 오베르 교회에 도달했다. 지난 70여일간 그에게 안식을 줬던 곳이다. 그는 교회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후 이제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대하는 것일지도 모를 신의 집을 바라보았다. 그는 알고 있다. 이제 그는 신의 품에 영원히 안길 수 없다는 것을.신의 섭리를 거부하고 자살이라는 금기를 범한 자에게 천국의 문은 굳건히 닫혀있다는 사실을.얼마 전 이 교회를 화폭에 담았을 때만 해도 그는 이곳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의 이 사내가 이곳에 온 것은 아직은 봄기운이 대지를 뒤덮고 있던 5월 하순 어느 날이었다. 그는 남부의 아를과 생 레미에서 2년을 보낸 후 파리에 사는 동생 테오의 집을 거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었다. 사정을 말하면 그는 아를에서 광기어린 발작을 일으켰고 심지어 자신의 오른쪽 귀를 도려내기까지 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자청해서 생 레미 정신병동에 입원했고 거기서 1년여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화상인 동생은 평소 자신과 친분이 있는 가셰 박사에게 형을 부탁했던 것이다.

가셰 박사는 피사로,세잔,르누아르 같은 인상파 대가들의 정신병을 치료한 경험이 있었고 그 자신이 아마추어 미술가이기도 했다. 그는 가셰 박사의 치료에 힘입어 점차 건강을 회복해갔다. 빈센트는 자살기도 3일 전까지만 해도 예술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그로부터 3일 후 그는 자신의 배에 총구를 겨눴던 것이다. 도대체 그 3일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동생의 경제적 지원 중단 암시에 갈등

사실 겉모습과 달리 빈센트의 마음은 착잡했다. 벌써 몇 년째 동생이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어 마음 한편엔 못난 형이라는 자괴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 달 전 그는 동생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어린 조카가 많이 아픈 데다 월급까지 깎여 가족을 부양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조만간 생활지원금을 끊을 수밖에 없다는 암시였다. 우여곡절 끝에 동생 부부는 계속 생활비를 대기로 했지만 이 작은 사건을 통해 그는 자신이 동생 가족의 국외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또 하나는 의사 가셰와의 관계에 회복불능의 균열이 생긴 점이다. 가셰는 처음엔 의사로서의 객관적 입장을 유지하며 그에게 정신적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평소 환자인 반 고흐와 마찬가지로 정서적 불안증에 시달리던 가셰는 이 매력적인 환자에 빠져들면서 의사로서의 자제력을 상실하고 만다.

빈센트와 격렬하게 토론하는 가운데 가셰는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 비범한 환자의 예술적 천재에 질투심마저 느꼈다. 그는 결국 빈센트를 돌볼 의무를 방기한다. 의사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 빈센트가 심적 안정감을 상실하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빈센트가 일을 저지른 건 무엇보다도 가셰의 딸 마르게리트를 잃은 아픔 때문이었다. 스물 한 살의 처녀 마르게리타는 빈센트를 흠모했고 빈센트 역시 자신이 사랑했던 사촌 케이를 닮은 이 처녀를 좋아했다. 빈센트의 모델 제의에 마르게리트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이젤 앞에 섬으로써 자신의 연모하는 마음을 솔직히 드러냈다. 둘의 관계를 염려한 가셰는 딸을 빈센트로부터 격리시켰다. 동생 가족으로부터 배제됐다고 느끼고 있던 빈센트로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해주던 존재마저 잃게 된 것이다. 그는 마침내 자제력을 잃었고 귀를 자르는 대신 이번엔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자살을 기도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일종의 자해를 함으로써 가셰 박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려 했던 것 같다.

◆마르게리타 실연 겹쳐 권총 자살

여관 주인 라부가 빈센트를 발견하고 가셰를 불러온 것은 저녁 아홉시가 좀 넘어서였다. 소식을 듣고 테오가 달려온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요한나는 부재중이었다) 빈센트는 벽에 기대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외로움과 불안감이 엄습할 때마다 그에게 태연자약의 묘약을 제공한 것은 바로 담배였다. 그는 아마도 지상에서의 마지막 안정을 취하고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회생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의사들은 총알이 너무 깊숙이 박혀 제거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다음 날 새벽 빈센트 반 고흐는 서른일곱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자살자에게는 장례미사를 베풀지 않는다는 관례에 따라 그의 관은 몇몇 친구와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밀밭 옆 공동묘지에 곧바로 매장됐다. 그 자리에 마르게리트는 없었다. 빈센트는 죽기 며칠 전 권총자살을 시도한 밀밭을 배경으로 '까마귀 나는 밀밭'을 그렸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금빛 밀밭에서 한 무리의 까마귀가 잿빛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시각적 유언장이 됐다.

빈센트가 죽은 지 채 10년이 안 되어 세상은 그의 예술적 천재를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다. 그를 그토록 배척했던 사람들은 이제 순례자가 되어 이 작은 마을 오베르 시르 우아즈의 정적을 깨고 있다.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그의 총구가 실은 그의 배가 아닌 세상의 무관심과 몰이해의 벽을 향한 것이었다는 점을.

/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