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IGM) 이사장은 1949년생으로 올해 이순(耳順)이다. 하지만 인상 좋은 얼굴에 늘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환갑의 나이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쉼없이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나서는 열정 역시 웬만한 30,40대 이상이다. 그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변호사로,TV 경제프로그램 진행자로,예비 정치인으로,그리고 지금 최고경영자(CEO)들을 가르치는 CEO로 줄곧 변신해 왔다.

2003년 IGM 설립 직후부터 함께 일해 온 한 직원은 그를 한 단어로 표현해 달라는 요청에 망설임 없이 '젊은이'라고 답했다. 마음과 생각이 젊고 언제나 꿈을 꾼다는 설명이었다. 전 이사장이 미국 유학시절과 현지에서 변호사로 성공하기까지를 담아 펴낸 책의 제목도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이다.


◆꿈을 꾸고 도전한다

2000년 여름 세종대 경영대학원장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대학원에 개설된 최고경영자 과정을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판에 박힌 수업을 답습하다 보니 동네 사장님들의 친목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바꿔 보고 싶었고 또 바꿔야 했다. 세종대에서 그를 부른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는 CEO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최고경영자 과정은 단순 친목 모임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고루한 강의에 안주하던 교수들을 밀어 냈다. 대신 외국계 기업의 CEO들을 강단에 세웠다.

'다국적 기업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경영 기법을 배우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당시 강석진 GE코리아 사장과 장정훈 존슨앤드존슨 아시아 · 태평양지역 사장,신재철 IBM코리아 사장(현 LG CNS 사장),김동수 듀폰 아시아지역 사장(현 듀폰코리아 회장) 등을 강사진으로 뽑았다. 강의 시작에 앞서 조찬 모임 등을 통해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꼼꼼히 점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 시러큐스대와 함께 글로벌 MBA 과정도 그때 만들었다. 지금은 보편화됐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잘 가르친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상철 전 KT 사장(현 광운대 총장),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등 내로라하는 거물급 CEO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 그들은 이후 전 이사장의 열렬한 후원자가 됐다. 신상훈 신한은행장,김신배 SK C&C 부회장 등도 마찬가지다. 윤석금 회장은 IGM을 세울 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당신은 할 수 있다"고 힘을 실어 줬다.


◆복권을 사지 않는다

전 이사장은 세상을 게으르게 사는 사람,적당히 살면서 요행을 바라는 사람을 싫어한다. 세상엔 절대로 공짜가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복권을 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책에도 '인생은 진지하게,열심히,대가를 치르며 살아야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적었다.

1972년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때 우연히 읽은 《법적 논리(Legal Reasoning)》라는 책은 그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 놨다. '법적 논리'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로 확신했고 당시로선 이름도 생소한 로스쿨 진학을 결심했다. 숱한 현실의 벽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뚫었다. 그리고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마친 뒤 뉴욕의 대형 로펌에 들어가 4년여 만에 파트너 변호사가 됐다.

그가 끝없는 노력을 강조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IGM 직원들은 요령을 피우면 전 이사장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진다는 걸 잘 안다. 부주의한 일처리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때문에 새로운 교육 과정을 준비할 때면 수요자 입장에서 강의 하나당 300시간 넘게 점검한다. 전 이사장은 스스로를 '격정적이지만 뒤끝은 없다'고 했다.

대신 그는 차별하지 않는다. 나이나 성별,학벌,출신지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한다. 나이 많고 피부 색깔도 다른 동양인 로스쿨 학생으로,그리고 대형 로펌의 유일한 한국인 변호사로서 10년 넘게 미국에서 지내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인해 차별당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래서인지 IGM에서는 나이와 직급이 거꾸로인 사례가 흔하다. 오직 능력으로만 평가된다. 일만 잘하면 3년 만에 연봉이 두 배가 되고 직급도 수직 상승한다.


◆마지막 꿈을 향해 간다

전 이사장은 한때 정치 쪽으로 외도(?)를 하기도 했다. 2000년 봄 16대 총선과 2002년 대선 캠프에 뛰어들었다가 높은 현실의 벽에 두 번 다 막혔다. 김앤장 변호사로 안주하기보다 공공 분야에서 봉사하고 싶었고 지역색 타파,글로벌화 진전 등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의 실패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줬다. 총선 후엔 세종대로 옮겨 CEO 교육에 대한 노하우와 인맥을 쌓을 수 있었고 대선 뒤엔 IGM을 세웠다. IGM은 6년 만에 국내 최대 CEO 교육기관이자 아시아 최고의 임원 교육기관으로 성장했다. 재학생만 2000여명에 달한다.

'주는 자가 되자.' 전 이사장의 삶의 신조이면서 IGM의 사훈이다. 점심을 얻어 먹었다면 저녁을 사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야 사람 관계건,비즈니스건 발전한다고 믿고 있다. 일 외에 잘하는 잡기가 없다는 그는 IGM을 찾는 CEO들에게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주려고 애쓴다. 이 때문에 지금도 일부 CEO들은 종신 학생처럼 등록하고 있다.

'CEO 교육 서비스에서 삼성전자,현대자동차와 어깨를 나란히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기구를 만들고 싶다. ' 그는 마지막 꿈이라며 더는 다른 곳을 쳐다볼 여유가 없다고 했다. 좋아하는 CEO로는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됐다며 빈사 직전의 IBM을 살려 낸 루 거스너 전 회장을 꼽았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