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대혼란이 닥치거나 큰 위기와 부딪치면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은 인지상정인지 모른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로 이미 정권이 무너진 나라까지 나왔다. 10년 전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국내서도 정부관계자들의 책임을 묻는 재판이 있었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대란을 야기한 이번의 미국발 금융위기 책임자는 누구일까.

시사주간지 '타임'이 근래 금융위기 책임을 가리는 온라인 투표를 진행해 주목된다. 자체적으로 평가 선정한 '25적'을 제시하고 '죄과'가 클수록 투표자들이 높은 점수를 주게 해 집계하는 방식이다. 전형적인 여론재판일 수도 있는데 지목인사들의 면면과 이유가 흥미롭다.

위기초래 책임 1,2위에 조지 부시,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나란히 올랐다. 각종 법안에 최종 서명하고 금융 · 경제 정책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자라는 의미가 될 듯하다. 위기발생 시점에서 현직이 1위,직전 대통령이 2위인 점에도 시사점이 있다.

3위에 '미국의 소비자'(The American Consumer)가 선정된 점도 관심거리.차입에 기댄 과잉소비와 무리한 부동산투자에다 거품이 영원할 것으로 기대하며 탐욕을 부린 일반 가계도 책임이 크다는 얘기다. 그린스펀 FRB 의장,그램 상원 금융위원장,콕스 SEC(증권거래위원회)위원장,폴슨 재무장관,매도프 나스닥 회장 등 전직 정책당국자들은 차례차례 다음 순서에 올랐다. 그린스펀이 저금리로 돈줄을 풀었고,그램 의원은 마구잡이식 금융규제 완화의 주역이며,콕스와 폴슨 등은 금융회사를 제대로 감시 못했다는게 여론의 평가인 셈이다.

책임자 명단에 부실 금융사 CEO가 다수 포함된 건 당연해 보인다. 신용평가사 S&P 대표와 부동산 붐을 유발했던 케이블TV 기획자나 유명 부동산분석가가 들어간 것에도 수긍이 간다. 다만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포함된 건 특이한 대목이다. 위안환율을 적극 관리한 중국이 대규모 미 국채 투자로 유동성 공급과 신용팽창을 야기했고,이게 금융위기에 기여했다는 이유다.

각국의 주요 정치인과 정부 요직자,통화 · 금융감독 책임자,대형 금융회사 경영진들이 한번쯤 눈여겨 볼 만한 리스트가 아닌가 싶다. 미국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권한이 큰 자리가 무섭다 하는 이유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