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유럽 시장에서 잘 팔릴 차종을 가늠해볼 수 있는 '2009 제네바 모터쇼'에서는 '고급스러운 소형차'가 화두로 떠올랐다. 소형차라도 값만 싸선 안 되고 디자인과 성능의 고급화가 뒷받침돼야 '깐깐한' 유럽 운전자들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양웅철 현대자동차 연구개발총괄 사장은 3일(현지시간) 제네바 모터쇼 전시장에서 기자와 만나 "유럽에서는 소형차도 고급이라야 잘 팔린다"며 "도요타 IQ 등 일본 소형차가 유럽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한 번 쓰고 버리는' 미국식 생산 방식에 젖어 내구성이 떨어지는 인테리어 소재를 쓰는 등 고급화에 신경을 덜 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 · 기아차가 ISG(Idle Stop & Go)를 소형차에 접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ISG는 정차시 자동으로 엔진이 꺼져 연비를 15~17%가량 높여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들어간 현대차의 신차 'i20 3DR'와 기아차의 '씨드SW ISG'는 관람객들에게 주목받았다. 현대 · 기아차가 '익쏘닉'과 '기아 넘버3' 등 MPV(다목적 차량) 형태의 고성능 컨셉트카를 선보인 것도 '소형차 고급화' 트렌드를 주도하기 위해서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알란 러쉬포드 현대차 유럽 판매 · 마케팅부문 법인장은 "지난 2년간 현대차는 '트루 퀄리티'를 내세운 아이덴티티 광고와 딜러 교육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4%가량 향상시켰다"며 "체코 공장과 유럽디자인센터에서 유럽인이 만들고 디자인한 차를 유럽 운전자가 구매한다는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유럽 시장 점유율 목표로 2.4%를 제시했다.

폭스바겐은 소형 해치백인 '폴로'를 전면에 내세우고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 신형 폴로는 기름 1ℓ로 25㎞를 달릴 정도로 연료 효율을 대폭 높였다. 푸조는 올 하반기 유럽에서 판매할 소형 MPV인 '3008'을 내놓고 뛰어난 연비와 높은 출력을 강조했다. 르노는 내부에 5.8인치 고화질 스크린과 인터넷을 가미한 소형 해치백 '뉴 클리오'를 선보였고 미니는 고성능 소형차인 '미니쿠퍼 JCW 컨버터블'을 깜짝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경차 브랜드 스마트는 2인승 경차 '스마트포투 한정 모델'을 출품했다.

유럽 시장에서 판매가 시들했던 일본 소형차도 한층 고급화한 디자인과 성능을 강조했다. 닛산은 모터바이크를 연상시키듯 근육미를 강조한 소형 컨셉트카 '콰자나'를 비롯해 큐브 픽소 NV200 등을 전시했다. 혼다는 연비를 30㎞/ℓ로 높인 소형 하이브리드카 '인사이트'를,도요타는 1.3ℓ 듀얼 엔진을 장착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20g/㎞로 줄인 소형차 '야리스'를 내놓았다.

제네바(스위스)=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