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입학의 계절이다. 지난 2일 사법연수원에서도 40기 연수생들의 입소식이 열렸다. 스산한 바람이 텅 빈 건물 사이를 오가던 지루한 겨울은 새내기 법조인들의 환한 웃음소리에 굴복하듯 새 봄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일산의 명물인 호수공원과 인접해 있는 덕분인지 사법연수생들의 사계절은 호수공원과 생태주기를 같이한다.

새들이 노래하고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는 봄.다년간의 수험 준비로 지친 연수생들의 화려한 생활이 시작된다. 1년차 연수생활의 황금기는 입소일부터 4월 말께로 예정된 체육대회까지다. 1000여명의 연수생들은 통상 14개 반으로 나뉘고,한 반은 A,B,C 3개조로 운영되며,한 조는 20여명의 연수생으로 이뤄진다. 연수생들은 반원,조원,반 지도교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서로의 간격을 보다 빨리 좁히기 위해 회식,엠티 등 다양한 행사가 기획되고,반 대항 체육대회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일체감도 더해진다.

체육행사가 막을 내리면 바로 다음 날부터 분위기는 급변한다. 6월 말부터 7월 초에 걸쳐 시행하는 1학기 시험 준비를 위해 세칭 '노는 모드'에서 '공부 모드'로 급속 전환되는 것이다. 기본 5과목인 민사재판실무,형사재판실무,검찰실무,민사변호사실무,형사변호사실무 외에도 다양한 과목의 평가에 대비하기 위해 연수생들은 구슬땀을 흘린다. 날로 더해가는 무더위와 연수생들이 쏟아내는 땀으로 지쳐버리는 나른한 여름이다.

1학기 시험이 끝나면 연수생들은 한 달간의 짧은 휴식기간을 갖고,9월이면 2학기가 시작된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건만 대부분의 연수생들에게 가을은 잔인한 계절이다. 1학기 평가 결과 때문이다. 거침없이 살아온 공부도사(?)들끼리의 경쟁에서 자존심을 다치지 않는 연수생들은 극소수다. 중위권,하위권 성적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부 연수생들은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기도 한다. 더욱이 1학기 강의가 총론 위주로 이루어졌다면 2학기는 사례형 연습기록을 작성하는 과제가 집중 부과돼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든 나날이 이어진다. 이 때문에 몸이 아파 중도 휴학하는 연수생도 생긴다.

연수원 마당을 가득 메운 베고니아 꽃의 향기가 스러질 무렵 고운 빛깔의 낙엽은 바닥에 나뒹굴어 깊은 가을을 재촉한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는 걸까. 최장 7시간30분 동안 답안을 작성해야 하는 힘겨운 2학기 시험이 끝나면 연수생들의 고단한 1년차 생활이 마무리된다.

흔히 연수원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사법연수생 1년차 형에 처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1년차 연수생들의 생활은 엄청난 체력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잿빛 호수를 뒤덮은 차가운 얼음이 남겨진 사람들의 가슴을 시리게 하는 겨울이 끝나면 다시 '1년차 형'을 선고(?)받은 새로운 1000명이 봄을 몰고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