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대표하는 은행인 씨티그룹이 결국 국유화(國有化)의 길을 가게 됐다.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불과 며칠 전까지도 은행 국유화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결국 씨티그룹 우선주의 보통주 전환을 통해 정부 지분을 36%까지 확대키로 했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꿔 국유화조치를 단행한 것은 그만큼 씨티그룹은 물론 미국 금융계가 처한 상황이 다급하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사실 미국처럼 국유화에 부정적인 나라에서 그것도 은행을 국유화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에서 씨티와 같은 대형 금융회사가 부실화될 경우 그 여파가 얼마나 클 것인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미국 정부가 일부 부정적 여론과 관례를 깨고 은행 국유화에 나선 것은 그런 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우리나라 금융시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은행들의 영업 여건은 악화되고 있지만 정부는 한편으로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라고 요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을 늘릴 것을 독려중이다. 이런 은행들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확충펀드가 조성됐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말 마감한 1차 펀드 자금지원 신청에서 거의 모든 은행이 자금 배정 의사는 밝혔지만 실제 자금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눈치만 보고 있다고 한다. 부실은행으로 낙인 찍히거나 정부의 간섭을 꺼려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하루하루 수출은 급감(急減)하고 환율은 연일 급등, 기업들의 목을 죄고 있는데다 가계 부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눈치나 보며 시간을 끌 때가 아니다. 따라서 은행들은 신속히 필요한 자본을 확충, 자금공급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은행이 제 기능을 다해야 시장의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기업 구조조정도 촉진돼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는 물론 은행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은행 자본 확충이 불가피하다면 한시라도 빨리 서두르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 역시 펀드 자금을 신속히 집행, '돈맥경화'를 속히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