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마지막 거래일인 27일, 1520원대에서 횡보하던 원달러 환율이 장 마감 30분을 남겨놓고 마치 로켓이 공중으로 솟구치듯 수직 상승하며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월말결제 수요가 많은데다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이 보이지 않으면서 외환시장의 경계감이 완전히 풀리는 모습이었다.

장중 2%가까이 급등했던 종합주가(코스피)지수는 또다시 환율 급등에 발목이 잡히면서 1060선 초반에서 거래를 마쳤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환율 하락재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수급불균형이 지속돼 급등세를 나타나냈다"면서 "2기 경제팀이 고환율에 별다른 반응 보이지 않으면서 전고점이 쉽게 열렸다"고 평가했다.

◆원달러 환율 장중 1540원 돌파…1600원선도 머지않아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6.5원이 급등한 1534원으로 마감됐다.
이같은 환율 레벨은 연중 최고치이자 지난 1998년 3월12일 1546원 종가 이후 11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미국 증시의 하락으로 개장과 동시에 1.5원이 상승한 1519원으로 거래를 시작한 이후 1520원선을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했다.
그러나 잠잠하던 외환시장은 마감 30분을 앞두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환율 그래프는 마치 로켓이 발사되듯 수직으로 솟구쳤다.

이날 장중 고점은 1544원으로 전기 장중 고점을 경신했다.
외환당국이 환율 상승을 경계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질적인 개입이 보이지 않자 환율이 급등세로 돌변한 것이다. 여기에 조선사와 중공업체들의 달러물량도 지난달부터 줄어드는 등 달러 공급이 줄어든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1기 경제팀과 달리 2기 경제팀은 환율 수준 관리 여부 결정을 유보해 온데다 2월말일까지 실제 물량 개입이 보이지 않자 장 막판 환율이 20원 가량 급등했다.

장중 외환당국이 한국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간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나왔지만 외환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외화유동성 부족 우려를 줄일 수는 있지만 현행 한미 통화스와프 자금이 300억달러 한도 중 136억5000만달러 남아있고 한중일 통화스와프 자금도 확대됐기 때문이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팀장은 "개입 경계감이 풀리면서 아침부터 비드가 강하게 나왔지만 이를 받아줄 달러공급이 거의 없어 환율이 레벨을 올렸다"며 "외환시장에 거래량이 실리지 않는 얇은 장이 이어지면서 월말수요가 조금씩 들어오는 것도 환율을 크게 들어올렸다"고 말했다.

◆환율에 발목잡히 코스피
미국 뉴욕 증시가 하락 마감한 가운데 '바닥 기대감'과 '경기침체 우려감'이 상충하면서 장 초반 등락을 거듭하던 코스피 지수는 장 후반으로 갈 수록 상승폭을 키워갔다.

수급여건이 취약한 상황에서 14거래일만에 순매수세로 돌아온 외국인과 기관이 쌍끌이 매수세를 펼치며 지수를 끌어올린 덕분이었다.

하지만 장 막판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40원을 넘어섰다는 소식에 코스피 지수는 빠르게 상승폭을 축소시키며 1060선 초반으로 하락하며 거래를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8.24p(0.78%) 오른 1063.03으로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130억원, 250억원을 순매수했지만 개인은 900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외국인은 선물시장에서 1300계약을 순매도하며 베이시스를 악화시켰고 이는 프로그램 매물 2000억원을 이끌어내는 원인이 됐다.

특히 외국인은 선물시장에서 장 초반 매수세를 유지하다 미 정부가 씨티그룹의 지분을 40% 확보키로 결정, 사실상 국유화한다는 소식과 동시에 매도 규모를 늘려갔다.

◆2기 경제팀 가동이후 원달러 153원 폭등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으로 지난 10일 출범한 2기 경제팀은 시장 개입 최소화와 외화유동성 공급 확충이라는 큰 틀에서 외환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지난 10일 이후 14거래일 동안 23일(-17원), 25일(-0.3원) 이틀만 하락했을뿐 연일 상승 곡선을 그려냈다. 이 기간동안 원달러 환율은 153원이나 급등했다.

정부로서는 국제금융시장에 철저히 연동해 움직이는 환율 흐름을 좌지우지할 힘도 없고, 이미 지난해 입증됐듯이 무모한 시장개입과 오락가락하는 환율정책은 당국의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라는 상황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섣부른 시장 개입은 외환보유고만 축내고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판단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한은과 유럽중앙은행(ECB)간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을 준비하는 것은 '제2,3,4의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미국 증시 등 대외 변수에 좌우되고 있는 외환시장에 섣불리 개입하기보다는 주요 통화들과의 스와프를 계기로 원화의 위상을 중장기적으로 높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장관은 최근 "환율(상승) 문제를 잘 활용하면 수출확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 처럼 당국이 환율의 긍정적인 측면을 봐야 한다고 화제를 돌리는 이유는 환율이 정부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방점은 외화를 최대한 끌어들여 외환시장의 완충지대를 두텁게 하는데로 모아지고 있다. '3월 위기설'과 같이 주기적으로 불거져 나오고 있는 외환시장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외화 수급 여건을 개선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외환시장의 과도한 쏠림현상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지만 외화유동성 공급을 대폭 늘려 외환시장 안정을 도모해 나가겠다는 게 현재의 입장으로 보면 된다"며 "ECB와 통화스왑 체결에 성공할 경우 얻게 되는 효과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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