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연마 로봇이 고마운 적이 없어요. 인건비가 절감되는 데다 안전 사고도 남의 일이잖아요. 건설 경기만 좀 나아졌으면 좋겠는데…."

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고지리에 있는 '수전(水栓:수도꼭지류)' 전문업체 워터웍스유진 생산 공장.경기 걱정을 하는 이정옥 대표(46)와 함께 연마 공장에 들어서자 통상 자동차 생산라인에서나 볼 수 있는 노란색 로봇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로봇들은 주물로 만든 수도꼭지를 정확하게 집어 고속 회전 연마기에 갖다 댔다.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거칠었던 표면이 금세 반질반질해졌다.

연마 로봇의 수전 가공 속도는 개당 2분30초 정도.10년 이상 연마 기술을 익힌 숙련공보다 2~3배 빠른 속도다.

이 대표는 "아버님의 뒤를 이어 회사를 맡게 된 것처럼 로봇이 숙련공들의 대를 잇는 것 같아 묘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며 미소 지었다.

워터웍스유진은 건설회사 등에 수도꼭지,샤워기,세면기용 수도관 뭉치를 포함한 수전류와 비데 등을 납품해 연간 3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중견 건설자재 업체.국내 100여개 수전업체 중 대기업 계열인 대림통상을 제외하면 중소기업으로서는 매출이 가장 많다.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 10채 중 서너 채에 우리 제품이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현재 와병 중인 창업주 이두근 회장(74)의 둘째 딸로 2001년부터 워터웍스유진의 경영을 책임 지고 있다.

이 회장은 끼니를 물로 채울 만큼 가난했던 충남 홍성의 한 농사꾼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0대 때 무작정 서울로 가출해 막노동,주물 공업사 보조 등으로 아르바이트하며 고학했다.

"공부(서울공고 중퇴)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눈썰미와 손 기술이 유달리 뛰어나셨다고 해요. "(이 대표)

직원 한두 명에 불과한 작은 기계공업사 등을 거치며 주물기계부품 가공 일을 배운 이 회장은 당시 한 유명 밥솥회사 관계자의 눈에 들면서 어엿한 직장을 갖게 됐다.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밥솥부품 제작에 몰입한 지 몇 년 안 돼 공장장에까지 올랐다. 그러다 1971년 직원 3명과 함께 서울 구로동에서 시작한 것이 워터웍스유진의 모태인 유진공업사다.

가스 밸브용 주물 부속품이 첫 생산품이었지만 이 회장은 곧 품목을 수도꼭지 등 수전 쪽으로 확대해 나갔다. 건설업체에 다니던 친구들이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월급을 타 가는 것을 보고 수전 쪽의 전망이 밝다는 판단을 내렸다.

회사는 때마침 불어 온 건설경기 호황으로 급성장의 기회를 잡았다. 일반 단독주택은 물론 연립,아파트 등 전국이 집짓기 열풍에 휩싸인 덕분이었다. 최고의 전성기는 '88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시기.

이 대표는 "1980년 초 · 중반까지만 해도 20억~30억원 하던 매출이 100억원대로 껑충 뛴 게 이때였다"며 "선금을 내고 제품을 가져가기 위해 새벽부터 공장 앞에 전국 도매상들이 줄을 서 있던 기억이 선명하다"고 말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시련이 닥쳐왔다. 외환위기로 매출이 반토막 이하로 줄어들더니 이 회장까지 회사 운영 자금을 구하러 다니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것.국내 한 식품회사를 다니다 1998년 회사에 합류,줄곧 자금 담당 임원으로 일해왔던 이 대표는 그야말로 얼떨결에 사장에 취임할 수밖에 없었다. 체육 교육학을 전공한 남동생이 있었지만 회사 일을 모르던 때였고 가정학을 전공한 '순딩이' 언니보다는 '악바리 근성'이 강한 이 대표가 회사를 맡기를 가족들은 원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여자 밑에서 일할 수 없다'며 영업팀원들이 단체로 퇴사,경쟁사로 몽땅 자리를 옮겨 버리는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했다.

매출은 전성기의 40% 선까지 추락했고 부채가 100억원을 넘어섰다. 공장용으로 구해 놨던 땅 1만㎡를 팔고 친척들에게 통사정해 꾼 돈으로 어음을 막았다. 260명에 달하던 직원도 100여명으로 줄였다. 거칠기로 소문 난 건설 현장 영업도 이 대표가 도맡았다.

"경쟁사에 넘어간 고객을 찾아오기 위해 건설 현장을 일일이 돌아다녔는데,'여자가 아침부터 재수없다'며 만나 주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계속 찾아갔죠."

문전박대하던 업체들도 이 대표의 끈기에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끊겼던 주문이 조금씩 살아나자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ERP)을 도입하고 수원공대 등과 산학 협력관계를 구축해 300여 가지의 다양한 수전 디자인을 개발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비데 사업도 본격화했다.

비데는 이 회장이 쓰러지기 전까지 10여년간 심혈을 기울여 일본과 유럽의 안전 인증,형식 승인까지 받아 두는 등 토대를 잡아 놓은 전략 사업.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세계 최초로 로봇 수전 연마기를 개발,생산 현장에 투입한 것도 이때다. 연간 3억원의 비용 절감이 가능했다.

알음알음으로 외부 업체에서 "우리 것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오자 2004년에는 아예 로봇사업부를 만들었다.

삼성테크윈(엔진블레이드 연마로봇),SJ테크(삼성애니콜 휴대폰 프레임 연마용 로봇) 등 쟁쟁한 업체들이 고객이 됐다. 비데에 대한 업계의 호평과 로봇 주문이 몰리면서 160억원이었던 아버지 때의 최고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회사는 현재 차기 성장 동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건설 경기가 너무 좋지 않은 탓이다. 아직은 2~3년치 물량을 확보한 만큼 견딜 수 있는 상태이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이 대표는 "침체기가 지나면 물절약 친환경 설비 생산 등의 환경 사업을 구체화해 볼 계획"이라며 "쉽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 준비하고 노력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성=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