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3월2일 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첫 출근을 위해 포항역 플랫폼에 도착했다.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 창립 멤버이자 대학 시절(서울대 금속공학과) 스승이었던 윤동석 교수의 권유로 입사하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서울도 아닌 포항에서,그것도 모래바람이 부는 황량한 백사장에서 청춘을 바쳐야 하나. 이 회장은 그때의 심정을 몇 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여관방에 누워 생각하니 한심합디다. 내일이면 첫 출근이라는 기쁨에 앞서 도대체 이 '깡촌'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싶더라고요. "

그렇게 시작한 '포철맨'은 40년 동안 철강 한우물을 팠다. 그리고 25일 마지막 출근을 했다. 이 회장은 이날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임직원들에게 "여러분과 함께 하며 제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지난 40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퇴임 후 2년간 상임고문으로 포스코 경영에 조언자 역할을 하게 된다. 사무실은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40층에 마련했다.

이 회장은 대표적인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한다. 포철 공채 1기로 입사해 수출부장,경영정책부장,신사업본부장,제철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40년 직장 생활 중 임원만 21년을 했다. 재작년에는 '세계 철강 대통령'이라는 국제철강협회 회장 자리에도 올랐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이력이다.

2003년 포스코 회장에 취임한 뒤 6년간 적지 않은 성과를 이뤄냈다. 분기마다 1조원 안팎의 순익을 꾸준히 달성했고 세계 철강업계 처음으로 '파이넥스'라는 신기술도 상용화했다. 파이넥스는 100년 이상의 철강역사를 갖고 있는 선진국들도 성공하지 못한 차세대 친환경 공법이다. '6시그마 운동' 등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원가경쟁력도 확보했다.

윤리경영에도 모범이 됐다. 이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늘 "윤리적 행위와 회사의 이익이 상충할 때는 주저없이 윤리적 행동을 선택하라"는 말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날 이임식을 마친 뒤 "특별한 계획 없이 당분간 쉬겠다"고 했다. 포스코는 27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포스트 이구택 체제'를 이끌어갈 차기 회장으로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을 선출하고 조직 개편과 함께 임원 인사를 실시한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