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짜에 미국행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해외 사업장 점검차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도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등 부자가 거의 동시에 해외 현장 경영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통상 전혀 다른 일정으로 해외 법인이나 사업장 등을 방문했던 정 회장 부자가 같은날 비슷한 시간대에 동일국 출장길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정의선 사장은 이달 23일 미국 애틀랜타로 떠나 기아차 조지아 공장 건설 현장 등을 둘러보고 26일 국내로 돌아올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 회장은 23일 정 사장보다 55분 늦은 오전 11시에 미국으로 출국해 LA에 위치한 현대차 미국판매법인, 기아차 미국판매법인, 디트로이트 연구소,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등지에서 경영 현안을 점검하고 27일 오후 인천공항으로 귀국한다.

정 회장 부자의 동선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미국 체류 시기가 이달 24∼25일 이틀간 겹치고 완성차 생산라인이 세워지고 있는 조지아 공장을 방문한다는 점도 공통된다.

그동안 정 회장 부자는 이처럼 비슷한 `일정표'로 해외 출장길에 함께 오른 적이 거의 없다.

정 회장은 이달초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국해 현대기아차 유럽총괄법인과 러시아 판매법인을 둘러보는 5개월만의 해외 현장 경영에 나섰지만 아들인 정 사장과 동행하지 않았다.

또 지난해 2월 현대차 인도 2공장 준공식 때도 정 사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정 사장이 기아차 소속이어서 현대차 행사에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해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기아차 해외영업을 총괄하고 있는 정 사장이 독자적인 경영 역량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배려 차원에서 가급적 아들과 함께 출장길에 오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작년 초 하얏트 호텔에서 진행된 현대차 '제네시스'와 9월 기아차 '쏘울' 출시 발표회 등 기념 행사에서 이들 부자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전례와 달리 이번에 정 회장 부자의 출장 일정이 밀착한 모양새로 짜여진 점과 관련해 그룹 경영권의 무게 중심을 정 사장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작업이 본격화되는게 아니냐는 전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은 정 사장이 기아차 경영의 한 축을 맡아 작년에 흑자 전환에 일익을 담당하면서 회사의 위상을 대폭 제고하는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앞으로 보다 비중있게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견해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에는 그룹 경영에 핵심 역할을 수행하던 부회장급 인사들이 대거 사퇴하면서 정 사장이 현대차로 이동하거나 부회장으로 승진토록 하기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정 회장이 최근 기아차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점도 정 사장이 점차 부친의 그룹 내 역할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서울연합뉴스) 김범수 안 희 기자 bumsoo@yna.co.krprayer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