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해 11월 금융위기 이후 다시는 돌파당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던 달러당 1500원 선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3월 위기설에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까지 겹치면서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부진으로 달러 공급이 늘어나지 않는 것도 환율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은행의 외화차입 여건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글로벌 신용경색 확대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환율 불안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우려했다. 글로벌 신용 경색이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 금융회사들의 자금 회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20일만 해도 전날 뉴욕 증시가 6년4개월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외환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환율 급등이 우려됐다. 실제로 이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은 3610억원의 주식 순매도를 했다. 이 돈이 달러로 바뀌어 빠져나갈 것이라는 예상으로 달러 매입 수요가 붙었다.

김성순 기업은행 차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되면서 달러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며 "달러 공급 물량이 워낙 적다 보니 매수세가 조금만 강해져도 원 · 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3월 위기설'에 대한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지난해 10~11월에 나타났던 것과 비슷한 심리적 쏠림 현상도 되살아나고 있다. 환율이 당분간 오를 것이라는 예상에 달러가 있어도 시장에 내놓지 않고,은행 딜러들도 추격 매수에 나서 환율 상승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지난주까지는 수출업체들이 달러를 꾸준히 내다팔면서 환율 급등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으나 이번 주 들어서는 수출업체들마저 달러를 들고 있다"며 "좀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돌아선 것 같다"고 말했다.

◆금감원,은행 외화차입 점검

국내 은행들의 외화 유동성 부족에 대한 우려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은행들은 외화자금 조달에 큰 어려움이 없으며 외환시장에 과도한 불안감이 형성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국내 10개 은행장들은 이날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와의 만남(금융협의회)에서 "최근 동유럽 위기 등의 영향으로 외화차입 금리가 다소 올라가긴 했지만 기존 차입금의 만기 연장이 이뤄지는 등 전반적으로 외화 조달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은행들의 외화 만기 연장이 대부분 6개월 미만의 단기물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글로벌 시장의 신용 경색이 계속될 경우 3개월에서 6개월 이후 다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같은 우려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국내 은행들의 외화차입 현황을 정밀 점검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동유럽 국가들이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해 대외채무가 동결되면 이 지역 대출 비중이 높은 서유럽 금융회사들이 다른 지역에 투자한 채권을 회수해 갈 것"이라며 "이 경우 국내 은행들의 외환 사정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현재 은행권의 총 외화 차입 850억달러 중 25%가 서유럽 금융회사에서 조달한 자금이며 이 중 100억달러의 만기가 올 상반기에 몰려 있다.

환율이 급등세를 지속하면서 외환시장 개입 여부에 대한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하루 10억달러 이하로 매도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환율이 급등세를 이어간다면 보다 과감한 조치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외환시장에서 투기와 쏠림 현상이 있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지나치다고 생각되면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호/박준동/이태명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