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바이러스.'

끝없이 이어지던 조문 행렬을 뒤로 하고 오늘 경기도 용인시 천주교 용인공원묘지에서 영면에 들게 되는 김수환 추기경이 이 땅에 뿌리고 간 씨앗이다.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 4시께부터 명동성당 앞에 늘어선 조문 행렬. 성당 문이 열리는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진 줄은 길이만 3㎞여,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초뿐이었지만 사람들은 5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엄동설한 속에 그렇게 기다렸다.

흐트러짐이 없는 줄, 거기에는 노인들에게 줄 앞쪽을 내드리는 양보도 있었고 줄 선 이들에게 무료로 화장실을 제공하는 봉사도 보였다.

우리가 원래 이랬던가? 새치기 밀치기 무례함 왁자지껄 무질서…. 우리 스스로의 자조섞인 모습은 이런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갑자기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을까. 평생을 희생과 봉사,사랑과 용서로 살아 온 김수환 추기경이 뿌린 바이러스가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누구는 '명동의 기적'이라고도 한다. 옛날 군주가 있던 시절을 제외하고 우리 역사상 이처럼 한 사람의 죽음 앞에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한 적이 있었을까. 이념 빈부 세대 종교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사람이 이토록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사실상의 국민장을 우리는 치러본 적이 없다.

그렇게 전 국민의 배웅을 받은 김 추기경은 나눔과 희생의 기적도 일궈냈다. 그의 안구 기증이 알려지며 각종 종교단체나 장기기증 관련 기관에는 장기기증자가 줄을 잇고 있다. 장기기증에 유독 인색했던 우리들이지만 이제 너나할 것 없이 그의 기적에 인도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공기처럼 늘 주위에 계셔서 고마운 것도 잊고 지내다 우리 곁을 떠나시고 나서야 갑자기 그의 커다란 빈자리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존경할 인물도, 의지할 지도자도 없는 이 시대에 그는 우리 모두의 어른이요 권위는 아니었을까?

김 추기경은 증오와 편견 이기심으로 바짝 메말라 버린 이 땅에 사랑과 용서, 화해와 위로, 나눔과 희생, 양보와 봉사의 씨앗을 심고 떠났다. 이제 그 씨를 싹틔우고 꽃을 피우는 건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다시 그에게 돌려주고 싶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김선태 논설위원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