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반려
두 분은 서울에 자주 올라오셨다. 봄이면 덕수궁 미술관에 국전을 보러 오셨고,때때로 특별한 전시회가 있어도 올라오셨다. "너도 가자" 하시면 나도 두 분을 따라 나섰다. 할머니가 노환으로 병원에서 몇 년을 보내셨는 데도 할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곁에서 수발을 든다는 얘기를 자주 전해 들었다. 하루를 거르기는커녕,어떤 날은 두 번도 가신다고 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면 "왜 그렇게 자주 오지 않느냐"며 원망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자상하셨고 할머니는 호방하셨다. 환갑이 훨씬 넘었을 때 두 분은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두 분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다니니 주변 분들이 참 보기 좋다고 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매일 같이 할아버지를 따라 나서 자전거 타시느라 그만 무리를 해서 자리에 누웠다는 소식이 어느 해인가 명절날 화젯거리가 됐다. 그때 중학생이었던 나도 참 듣기 좋았다.
할아버지는 병원에 계시지 않았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장면부터 두 분은 언제나 함께 계셨었는데….밤이 많이 늦었지만,올라오는 길에 할아버지 댁에 들렀다. 절을 받은 할아버지는 이내 할머니 말씀을 하셨다. "나도 이제 곧 따라 가야지.할머니 편히 보냈으니 이제 할 일도 다 했고…" 할아버지 말씀에는 절망이나 포기가 묻어나지 않았다. '오늘도 하루가 가는구나…' 하시는 듯 담담했다.
"자전거를 한참 타고 나서는 80㏄짜리 스쿠터 두 대를 월부로 사서 신나게 탔지.그 스쿠터로 안성을 떠나 막내아들 내외가 사는 부산까지 간 적이 있어.대구까지는 갔는데,시내가 하도 복잡해서 길을 물어봤더니,그걸 타고 어떻게 부산까지 가느냐며 놀라더라고.안성에서 대구까지 갔는데 말이야."
할아버지는 자제들로부터 칠순 선물로 빨간 프라이드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옆에 태우고 정말 전국을 안 다닌 데가 없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거동을 못하게 되자 휠체어까지 싣고 공원으로 드라이브를 다니셨던 추억을 끝으로,할아버지는 두 분이 함께 한 긴 세월을 반추했다.
두 분,참 화목하셨다는 말씀에 할아버지는 "그래.같이 산 지 올해로 67년이네.참 잘 살았어.그게 꼭 사랑이라기보다는….그냥 둘이 뭐든지 같이 했지"라고 하셨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한 반려였던 할아버지 내외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흑백 활동사진처럼 참 애잔한 잔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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