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경기도 포천 이동면에 있는 우천식품 두부 제조공장.팔팔 끓인 콩 국물에 소금 성분의 응고제가 투입되자 콩 국물이 서서히 굳기 시작한다. 사각형으로 모양이 잡힌 두부는 절단기에서 적당한 크기로 잘려 플라스틱 팩에 한 모씩 담긴다. 이 곳에서 매일 만들어 내는 두부 생산량은 3만~4만모 안팎.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는 전자동 시스템인 덕분에 반자동 방식이 대부분인 다른 중소 두부업체에 비해 생산성이 월등히 높다는 것이 조현진 대표(57)의 설명이다. 조 대표는 "생산한 두부의 대부분은 '풀무원'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며 "우천식품은 깐깐한 품질 관리로 유명한 풀무원이 유일하게 두부 납품을 허용한 업체"라고 자랑했다.

식품업계에서 우천식품은 작지만 강한 '콩 전문 식품기업'으로 통한다. 두부와 유부만으로 지난해 1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국내 식품시장을 장악한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중소기업이 이 정도 규모를 갖추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우천식품은 육군 장교 출신인 창업주 고(故) 조성호씨(1927년생)가 1975년 서울 월곡동 자택 1층에 자그마한 두부 공장을 내면서 출발했다. 1963년 전역한 뒤 무역업 건설업 등 굵직굵직한 사업에 뛰어들었던 조씨가 뜬금없이 두부에 '꽂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두부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전망인 만큼 좋은 재료로 만든 뒤 적당한 이윤을 붙여 팔면 큰돈은 못 벌어도 평생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대기업이 회사 이름을 내걸고 판매하는 '브랜드 두부'는 없던 시절.'동네 공장'에서 만든 두부를 인근 재래시장 상인들이 납품받아 판매하는 상황이었다. 자택 1층에 공장을 낸 우천식품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두부를 생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월곡동 인근에서 꽤 알아주는 두부업체로 성장했다.

신생 두부업체로 두각을 나타내던 우천식품에 변고가 생긴 때는 1983년.창업주가 간암 판정을 받은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하직한 것.하지만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맏아들 조 대표는 가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고,창업주 역시 제철회사에 다니던 아들에게 차마 "두부공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조 대표는 "그때만 해도 고향인 경상도에선 '두부 제조는 하층민이 하는 일'이란 인식이 있었던 데다 단단한 철강이 아닌 물렁물렁한 두부를 '인생의 반려자'로 삼아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며 "외상 대금 등 기존 거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가업을 맡긴 했지만 평생 두부와 씨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가업을 잇기 싫었던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시련은 조 대표가 가업을 이어받은 순간부터 들이닥쳤다. 우천식품 창업주가 사망한 뒤 경쟁 업체들이 "납품가를 낮춰 주겠다"며 우천식품의 거래처를 빼앗기 시작했다. 오기가 발동한 조 대표는 '맞불 작전'으로 대응했다. 경쟁 업체가 두부 가격을 내리면 그보다 더 낮추는 식이었다. '잠깐 몸담겠다'던 31세 젊은 최고경영자(CEO)는 어느덧 우천식품에 인생을 걸 정도로 매달리게 됐다. 3년간 계속된 '가격인하 전쟁'은 1986년 경쟁 업체의 항복 선언으로 끝났지만 이로 인해 우천식품이 받은 타격도 만만치 않았다.

300여개 업체가 난립한 두부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언제든 가격인하 전쟁은 재현될 수 있는 상황.오랜 고민 끝에 조 대표는 1988년 결단을 내린다. 주력이었던 두부 사업을 접고 유부 제조에만 전념키로 한 것이었다. 유부는 제조 공정이 두부보다 까다롭기 때문에 경쟁 업체가 10여개에 불과했다.

'유부 올인 작전'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 분산 투자됐던 회사 재원이 유부에 집중되면서 생산성이 크게 높아진 덕분이었다. 주문량이 늘면서 조 대표는 1991년 포천시 내촌면에 대규모 유부 생산공장을 신축하기에 이른다. 창업 후 16년 동안 계속된 '동네 두부' 시대를 접고 본격적인 두부 제조업체로 변신한 것이다. 약품 도매사업을 하던 친동생 조우권 전무(51)가 합류한 건 그로부터 3년 뒤였다. '투톱 체제'로 전환되면서 내부 경영효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을 뿐 아니라 외부 영업력도 크게 강화됐다. 1997년 말 불어닥친 외환위기는 우천식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공격 경영을 펼치던 경쟁 업체 3~4곳이 고금리에 차례차례 쓰러지면서 우천식품에 주문이 몰렸기 때문.덕분에 외환위기 직전 15억원에 그쳤던 연매출은 2000년대 들어 5배 이상 불어났다.

유부 사업의 성공은 조 대표에게 10여년 전 손털었던 두부 사업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는 물론 '실탄'까지 마련해 줬다. 때마침 '웰빙 붐'이 일면서 두부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어나던 참이었다. 2004년 포천 이동면에 문을 연 두부공장은 지난해 60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하며 우천식품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유부와 두부에 이은 조 대표의 다음 목표는 콩국수 등에 쓰이는 '콩물'과 첨가제를 전혀 함유하지 않은 건강 두부 시장 개척이다. 이미 제품 개발을 끝내고 지난해 10월부터 포천 두부공장 인근에 20억원을 투입,콩물 및 무첨가제 두부 전용 공장을 짓고 있는 상태다. 오는 4월 공장이 완공되면 하반기부터 전국에 판매된다.

조 대표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막연하게 품었던 제철업에 대한 꿈을 버리고 그 당시 하찮게만 보이던 가업을 이어나간 것"이라며 "우천식품을 국내 최고 수준의 콩 전문 식품업체로 키우는 데 온 힘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천=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