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엘피다가 대만의 파워칩과 프로모스, 렉스칩 등 3사와 통합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도체 산업의 구조재편이 이제는 국경을 넘나들며 급물살을 타는 양상이다. 이들 4개 회사가 통합하면 시장점유율 면에서 하이닉스를 제치고 삼성전자에 바로 뒤이은 세계 2위업체로 등극하게 된다. 당장은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자는 목적에서 나온 통합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 업체들을 겨냥하면서 D램 반도체 업계의 판도변화를 노린 게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우리로선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통합을 과소평가하는 견해도 물론 있다. 기업통합이 됐다고 해서 그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사례가 D램 업계에서는 별로 없었다거나, 공급과잉인 상황에서 난립(亂立)된 회사들이 통합되면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업계의 공급조절 능력도 강화될 것이라는 점 등이 그 근거다. 또한 일본 엘피다든, 대만의 반도체업체든 모두 정부의 자금지원을 원하고 있을 만큼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통합하더라도 크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각국에서 알게 모르게 보호무역주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단순하게 볼 일이 결코 아니다. 이들 업체에 일본과 대만 정부가 자금지원을 하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산업정책적으로 다른 물밑 지원도 함께 이뤄질 공산이 크다. 그럴 경우 불공정 보조금을 문제 삼을 수도 있겠지만 통상분쟁이 확대된다는 것 자체가 우리로서는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위기 이후를 내다봐도 마찬가지다. D램 반도체시장에서 한국에 빼앗긴 주도권을 탈환하겠다고 NEC 히타치 등이 합쳐져 탄생된 것이 엘피다이고 보면 이들이 외국계 기업과 통합에 나선 것을 결코 가볍게 생각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최근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이 잇달아 앞선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앞으로 변화된 경쟁구도를 전제로 새로운 전략을 짜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 역시 급변하는 반도체 산업의 재편(再編)을 주시하면서 우리의 신성장동력 전략을 다시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