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금융투자회사(이하 증권사)들은 '소액결제'라는 새롭고 강력한 수단을 갖게 된다. 지금까지는 증권사 고객들이 증권계좌만으론 입출금과 송금,각종 공과금 납부 등을 할 수 없어 증권사가 제휴한 은행에 연계계좌를 만들어야 했다. 소액결제는 은행 연계계좌 없이도 이런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은행이 독점해온 소액결제에 증권사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이들간 경쟁으로 자연스럽게 각종 수수료가 인하돼 고객들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사들은 더욱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5월부터 소액결제 서비스 시작

소액결제가 무엇인지 알려면 지급결제부터 이해해야 한다. 지급결제는 현금 등 화폐적 가치를 주고받아 채권 · 채무 관계를 끝내는 것을 가리킨다. 현금을 주고받는 동시에 결제가 마무리된다.

하지만 어음 수표 계좌이체 신용카드 등 비현금 지급수단은 금융회사 간 자금이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급→청산→결제'의 3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줄여서 지급결제라고 부른다.

지급결제엔 크게 △거액결제(금융회사 간 자금거래,한국은행의 한은금융망을 이용) △소액결제(개인 기업 등과 금융회사 간 거래,금융결제원의 지급결제망을 이용) △증권결제(증권의 소유권을 이전하고 매매대금을 결제) △외환결제(외환매매로 발생하는 채권 · 채무를 결제) 등이 있다.

소액결제는 예금을 취급하는 은행의 고유 업무였다. 하지만 2007년 자통법이 제정되면서 비은행금융회사인 증권사에 이를 허용했다. 이에따라 증권사는 금융결제원이 운영하는 11개 소액결제 시스템 가운데 지로,CD(현금지급기)/ATM(은행자동화기기),타행환,전자금융,CMS(자금관리서비스) 공동망 등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기존망을 함께 이용하게 되면서 증권사들은 특별참가비 명목의 돈을 내야 한다. 지난해부터 증권사별로 이 돈을 얼마나 낼지를 두고 증권업계와 은행권이 줄다리기를 해왔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참가비 문제에 대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져 이르면 오는 5~6월께 20여개 증권사들이 소액결제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액결제,어떻게 이뤄지나

증권사의 소액결제는 개인고객에게만 우선 허용된다. 또 자금이체 대상은 위탁계좌의 현금(고객예탁금)으로 한정된다. 유가증권 등 금융상품은 결제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예를들어 증권사 고객인 A씨가 친구인 B씨의 은행계좌로 현금 100만원을 송금한다고 치자.A씨는 자신의 증권계좌를 통해 일반 은행의 인터넷뱅킹처럼 100만원 송금주문을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 B씨도 송금주문이 처리되는 즉시 돈을 찾을 수 있다. 고객들은 일반 은행을 이용하는 것과 차이가 없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작 돈은 증권사가 아닌 은행이 지불했기 때문에 여기서 증권사와 은행 간 채권 · 채무가 발생한다. 그러나 은행 대신 증권사가 돈을 내 준 경우도 있을테니 금융결제원이 중간에서 두 회사 간 채권 · 채무의 차액을 계산해 양측과 한국은행에 알려주면 이튿날 차액이 결제돼 채권 · 채무 관계가 끝난다.

◆은행 증권사 경쟁 심화

고객들은 증권사가 소액결제를 시작하면 한층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증권사 위탁계좌의 경우 지금까지 급여이체계좌로 등록할 수 없었고,신용카드 대금을 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체크카드 계좌로 이용할 수 없었고,공과금 적금 등의 자동이체도 제한됐다. 지로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고,자금이체시간 제한도 있었다. 그러나 증권사 소액결제로 이런 불편이 모두 사라진다.

금융산업 측면에서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은행과 증권사 간 지급결제계좌 확보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다.

지급결제계좌는 개인 소득의 입금과 각종 소비나 투자용 출금을 위한 기본 계좌로 활용되기 때문에 은행이 독차지해왔다. 은행은 지급결제계좌를 활용해 각종 예금,펀드,보험,대출 등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증권사도 소액결제를 기반으로 은행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는 만큼 지급결제계좌를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벌일 것이다. 이처럼 고객을 뺏으려는 증권사와 지키려는 은행의 경쟁으로 각종 지급결제수수료가 감면되는 효과가 생길 전망이다.

장기적으론 금융회사 간 겸업 요구가 더욱 강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황선철 금융결제원 연구역은 "증권사는 투자상품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에 경기변동에 따른 자금 유출 · 입의 변동성이 커 예금과 같은 안전 금융자산을 취급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며 "소액결제 허용을 계기로 금융회사 간 겸업 허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진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