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4일 새벽 5시.서울 관악구 신림 사거리 H인력사무소 앞은 한산하기만 했다. 평소 문 여는 시간보다 30분이나 지났지만 사무실의 불은 좀처럼 켜질 줄을 몰랐다. 10분쯤 지나자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6년째 막노동을 하고 있다는 조규남씨(가명 · 43)도 그들과 함께 사무실 앞을 서성거렸다.

조씨는 "일거리가 없어서 사무실 문 여는 시간도 자꾸 늦어지고 있다"며 "매번 허탕을 치면서도 혹시나 싶어 오늘도 나왔다"고 말했다.

조씨는 원래 고시공부를 하던 학생이었다. 10년 전 어려운 형편 때문에 책값이라도 벌어보려고 인력사무소에 나오던 것이 이제는 직업이 돼버렸다. 당시에는 언제 나와도 일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일거리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주일에 한번 일을 잡기도 힘든 상황이다. 불황인데다 날씨마저 추워 일거리가 줄어들어서다.

그는 "작년 11월 말부터 일을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며 "이번 달에는 아직 한 번도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형편이 어려운 것은 조씨뿐만이 아니다. 조씨의 큰형도 얼마 전 20년 동안 근무하던 직장을 잃었다. 조씨의 누님도 혼자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상태다. 당연히 이번 설날에도 집안 분위기는 냉랭했다. 일흔 넘은 노모에게 100만원을 빌려 상경할 때는 죄송한 마음에 얼굴조차 들 수가 없었다.

조씨와 같은 실질실업자는 작년 말 기준으로 300만명을 돌파했다. 실질실업률도 11.6%에 달한다. 정부도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연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노력도 조씨에게는 큰 위안이 되지 못한다. 그는 "정부가 우리 같은 사람들 안심시키려고 하는 소리인 걸 안다"며 "일자리 문제가 하루이틀 만에 쉽게 해결되겠냐"고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이날도 결국 조씨를 포함해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일을 나가지 못했다. 조씨는 이처럼 일을 구하지 못하는 날에는 근처 관악산에 올라간다고 한다.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산에라도 가서 마음을 달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비정규직도 좋으니 일자리 좀 많이 늘려주세요. " 조씨가 정부에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