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끝난 벤처산업협회 회장 선출을 놓고 말들이 많다. 벤처정신 실종이라느니,정치판보다도 못하다느니,패거리 모임으로 전락했다느니 등등.한 벤처 기업인은 "이번 회장 선출과정에서 빚어진 볼썽사나운 행태는 정치판과 다를 게 없다"며 "일부 인사 때문에 대다수 벤처인들이 도매금으로 비난받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한 켠에서는 이번 회장 선출과정에서 빚어진 일로 회원사들 간 갈등의 골만 깊어져 협회가 다시 벤처산업협회와 한국IT기업연합회로 쪼개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벤처산업협회(회장 백종진)와 한국IT기업연합회(회장 서승모)는 지난해 8월 벤처 발전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겠다며 경제단체 중 가장 먼저 통합을 선언했다. 정부의 조직축소 개편 방침에 장단을 맞추기 위해서다. 출발은 좋았지만 한 달 뒤부터 협회엔 갈등의 싹이 돋기 시작했다. 공동회장직을 맡았던 백 회장이 횡령 · 배임혐의로 구속되자 서 회장이 이달 말 정기총회에서 있을 회장 선거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물밑작업에 들어간 것.이에 벤처산업협회 측 임원들은 통합협회의 초대 회장을 뽑는 것이니 만큼 누가 봐도 벤처업계를 대변할 만한 얼굴을 내세워야 한다며 벤처업계의 간판스타로 불리는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를 삼고초려의 과정을 거쳐 내세웠다. 협회의 주도권을 한국IT기업연합회 사람들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속내도 있었을 게다.

협회는 선거관리위원회를 발족하고 두 사람을 대상으로 신입사원 채용면접 보듯 '회장면접'까지 봤다. 협회의 화합을 위해 '회장 경선은 안된다'는 통합원칙에 따라 1년은 공동회장,나머지 1년은 황 대표가 단독회장을 맡아 달라는 선관위의 제안을 두 사람이 받아들이면서 회장 선출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서 회장이 며칠 뒤 합의를 번복하고 회장에 단독 출마하겠다고 밝히면서 협회에 파문이 일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공동회장제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이사회도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도록 모종의 역할을 했다. 이사회에는 주로 한국IT기업연합회 출신 임원들만 참석했고 서 회장의 의중을 꿰뚫은 듯 선관위의 결정을 부결시킨 뒤 그 자리에서 회장 선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이날 이사회는 공정한 룰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많다. 정의와 도전정신으로 넘쳐야 할 벤처업계에 수적 우세만 있으면 안 될 것이 없다는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는 점에서다. 이사회는 선관위의 제안에 대해 형식적인 통과논의만 하면 됐다. 설사 회장 선거를 해야 했다면 후보등록 등 공식절차를 밟았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이사회의 수적 우세를 이용해 공식 후보등록도 하지 않고,게다가 황 대표가 자리를 뜬 상황에서 투표를 하고 당선 발표까지 해버렸다.

이번 사태를 두고 벤처인들은 누구 편을 들까. 지금은 100년 만에 한번 올까 말까한 불황과 싸우는 시기다. 벤처업계가 무릎을 맞대고 차세대 먹거리 창출을 위해 노력해도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패가 갈려 볼썽 사나운 밥그릇싸움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밥그릇싸움하는 벤처기업에 젖줄을 대줄 벤처캐피털리스트나 정부 관계자는 없다는 점을 명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