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교섭단체들의 합의에 따라 제281회 임시국회가 문을 열었다. 작년 12월 제279회 임시국회에서 폭력국회에 이어,지난 1월 임시국회가 거의 활동 없이 폐회한 것을 볼 때 이번 임시국회 활동에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 것 같다. 다행히 국회의사일정에 관해 교섭단체간 외형적 합의가 이뤄졌지만 내용상 합의나 타협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국민들의 국회에 대한 생각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국회의원 수를 30% 감축하자는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제에서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국회의 권한과 기능확대가 필요한 시점에 의원정수를 줄이자는 주장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지만,국민들 다수는 감정적으로 국회를 외면하고 싶어 한다. 만일 이번 임시국회마저 또다시 민심과 유리된다면 한국의회정치의 위기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임시국회가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여야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면 된다. 첫째는 정당이익에 관한 생각을 접으면 되고,둘째는 의사결정 절차에 합의를 하면 된다. 어찌 생각하면 너무 뻔하고 더 쉬울 수 없을 정도의 문제다. 설령 어려운 문제라 해도 국회가 처한 현실을 본다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조건이다. 국회의원들은 언제나 국민들의 이익을 우선으로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계산이 앞서는 것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국민의 이름을 볼모로 자기정당의 이득이나 챙기는 얄팍한 정치행태를 포기해야 한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다뤄야 하는 의제를 결정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국회 내 대화를 강조하지만 국회폭력에 대한 가중처벌을 주요 안건으로 내세우는 여당이나 국회가 열리기 전부터 2월 국회를 입법전쟁으로 규정하는 민주당을 보면서 국민들은 국회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실망할 여력조차 없음을 느낀다. 여야가 우선과제로 내세우는 안건들이 국정에 가장 긴급한 문제이기 때문인지 혹은 다른 정당을 공격하기에 좋은 호재라 그런 것인지 솔직히 답해야 한다. 상대당을 비난해 이득을 얻으려는 속셈이라면 대화를 통한 합의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최소한 여야가 국민들이 국회에서 처리해주기를 원하는 사안이 무엇인지 여론조사라도 해보았으면 좋겠다. 법안처리 방향은 고사하고 어떤 법안을 국회에서 다뤄야 하는지도 합의할 수 없다면 차라리 2월 국회를 휴회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경기부양법안에 대한 하원표결에서 177명의 공화당 의원들 중 단 한 명도 찬성하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서는 11명이 반대를 했다. 감세법안을 주장하던 공화당은 대통령의 법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반대할 정도로 합의가 있었지만,대체법안을 제출하거나 투표를 통해 반대의사를 밝히는 것이 전부이다. 아마도 상원에서는 공화당 의원이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기부양법안이 폐기되거나 의회가 무력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의회는 의사규칙의 준수가 의회운영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국회에서 야당을 무시하는 일방적 상임위원회가 무질서 국회를 야기했고,다시금 국회의원 자신들의 입지를 좁히는 국회질서법안이 대두되는 악순환을 가져오고 있다. 국회의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의장의 권한을 강화하지도 못하고,이는 다시 중재자로서의 국회의장을 만들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상대당을 꺾는 것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방법이 아님을 정당들은 깨달아야 한다. 이견이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차이를 말함이고,이러한 국민들 간의 차이를 합의로 이끄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안다. 국회가 국민을 걱정해야지 국민이 국회를 걱정해서야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