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책걸상 전문 제조업체인 성림교구의 류성훈 사장(29)은 교사로 근무 중인 누나와 함께 한달에 한 번 아버지가 묻혀 있는 부여로 성묘를 떠난다. 선친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보따리 행상과 자전거 · 리어카 배달을 통해 무일푼으로 기업을 일궜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병마로 인해 기업가로서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2년 전 56년의 짧은 삶을 마감해야 했다. 류 사장이 첫 독자 경영에 나선 지난해 매출은 72억6000만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21.8% 늘어났다. 최근 류 사장은 무덤 속의 아버지에게 "이만하면 제가 제법 했죠.더 잘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성림교구를 창업한 고(故) 류종하씨(1951년생)는 계백 성충 등 '백제 팔충신'이 났다는 부여군 충화면의 만지리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8세 되던 때인 1969년까지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한 그는 맏형이 있던 서울로 올라왔다. 형도 세 얻어 사는 형편이라 1977년 결혼하기 전까지 형수의 눈치를 보며 어린 조카와 좁은 방 한칸을 같이 쓰면서 생활 잡화와 콩나물 야채 같은 식료품을 떼다 팔았다.

지금의 교구 사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5년 지인의 소개로 학교에서 쓰는 숟가락 가구 학습교재 과학실험기자재 등을 납품하면서부터다. 1980년엔 두 명의 동업자와 성림상사를 차리고 사업을 본격화했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집에 사무실을 두고 경리 아가씨가 전화 연락을 취했다. 동분서주하며 발주처를 찾아다닌 덕분에 사업은 틀을 잡아 갔다. 1986년에야 비로소 서울 종로4가 봉익동에 8평짜리 사무실을 차릴 수 있었다. 1993년엔 난생 처음으로 서울 상계동에 장만한 34평형 아파트에 입주, 아내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창업자는 2000년 사업의 대전환에 나섰다. 교구 유통을 접고 교구의 제작 및 조달 납품을 주업으로 하는 오에스기업(현 성림교구 전신)을 세웠다. 유통업의 규모와 성장세에 한계를 절감하고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 이 해 12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에 980평 규모의 공장을 완공하고 학교 책걸상을 생산했다. 2001년 첫해 매출은 13억원으로 출발이 좋았다.

ISO9001(품질경영) 인증을 비롯해 KS마크,Q마크,친환경표지 인증,조달청 우수제품 인증 등을 잇따라 획득하면서 사업이 안정 궤도에 들어갔다.

그러나 몸을 돌보지 않고 사업에만 매달렸던 탓일까. 2006년 1월 창업자는 지압을 받다가 오른쪽 위팔이 부러지는 일을 당했다. 단순 골절인 줄 알았으나 정밀 검사를 받아 보니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이었다. 술 담배를 즐겼어도 몸 하나는 튼튼하다고 자부한 그에게 뜻밖에 닥쳐온 불행이었다. 항암 치료를 받고 경과가 좋은 듯했지만 이듬해 9월 느닷없이 감기가 폐렴으로 번져 사망했다.

아들인 류성훈 사장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가업을 계승해야 했다. 하지만 준비 안 된 승계는 아니었다. 군에서 전역한 2002년(대학교 3학년) 아버지 회사에 입사한 뒤 대리 과장 부장을 거치며 업무를 익혀 왔기 때문이다.

류 사장은 최고경영자(CEO)가 된 후 아버지의 근면함과 배짱을 차츰 닮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발주처와 물량에 대한 정보가 가장 빨랐어요. 저도 선친처럼 승용차로 연간 7만㎞를 달리며 정보를 수집합니다. 또 일과의 70%를 학교 · 교육청 · 조달청 ·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는 데 씁니다. 직접 영업도 하지만 우리 제품의 평가를 듣고 애프터서비스할 게 있으면 신속하게 수용해 주면서 신뢰를 쌓아 가죠."

CEO가 된 뒤 많은 것을 자제하고 있다. 예전에는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던 날이 많았지만 지금은 업무 부담 때문에 밤 11시를 넘기는 일이 거의 없다. 술 약속이 없는 날에는 이메일로 받은 업무보고서와 직원이 아파트에 갖다 놓은 경영 자료를 검토하고 이튿날 업무 방향을 지시한다.

배포도 두둑해졌다. 류 사장은 당장 돈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나중에 계속해서 주문이 들어올 것 같으면 낮은 가격을 써서라도 주문을 받아온다. 간부들과 상의하긴 하지만 모든 단가는 그가 최종 결정한다. 작년 말 선친이 사놓은 3400평 땅에 신공장(양주시 광석면 비암리)을 완공하는 과정에서도 나름의 수완을 발휘했다. 공사업자들로부터 결제가 늦다는 성화를 들어 가면서도 끝내 목표한 가격과 시점에 공사를 마쳤다. 지난해에는 교육 당국의 책걸상 교체 주문이 대폭 늘어난 데다 고객의 요구에 즉시 대응하는 자세가 좋은 평판을 얻어 72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올해는 경기 후퇴로 수요가 감소하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남이 보기엔 유복한 상속처럼 보여도 승계한 26억원의 채무를 갚으려니 생각하면 아득하다. 박리다매에 높은 판매 수수료를 요구하는 업계 구조 때문에 순익은 매출액의 5%를 밑돌고 그나마 운영 자금으로 쓰면 금세 동이 나고 만다. 이 때문에 류 사장은 도무지 쉴 틈이 없다. 그나마 주말에 교회에 나가고 틈틈이 배드민턴을 치는 게 유일한 휴식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결혼 상대자를 만날 생각도 못하고 있다.

류 사장은 "제 스스로 회사가 반석 위에 올라갔다고 평가하기 전까지는 지금의 사무실과 아파트를 이전하거나 넓힐 생각이 없다"며 "항시 아버지가 지켜본다는 마음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양주=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