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대기업 5년차 직장인 김현경씨(30)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거실 난방 밸브를 잠갔다. 남편과 자신은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만큼 안방과 아이 방만 난방을 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한달 후 받아든 난방비 고지서는 실망스러웠다. 전체 면적 절반 가량의 난방을 중단했음에도 난방비는 20%정도 밖에 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알고보니 문제는 난방계량기의 측정 방식에 있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원장 조용주)은 화재 · 설비연구센터의 이태원 박사팀이 각 가정이 사용한 난방의 열량을 정확하게 잴수 있는 첨단 적산열량계를 개발했다고 28일 밝혔다. 기존 지역난방 아파트 단지는 가정에 유입된 난방수의 유량만을 측정해 요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에너지 사용을 줄인 만큼의 난방비가 줄어들지는 않는 문제점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연구팀이 모의 아파트 2채(각 106m²)를 이용해 집안 전체를 난방한 아파트와 거실을 제외하고 방 3곳의 밸브를 잠근 아파트를 비교한 결과 거실만 난방한 아파트의 열량은 종전보다 60% 감소됐으나 난방수의 유량은 39% 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월 난방비로 환산해보면 거실만 난방한 가정은 열량으로는 12만7000원을 내야하지만 실제로 17만1000원이 부과돼 월 4만4000원이나 더 내는 꼴이다. 아낀만큼 줄지않는 난방비 계산방식이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킨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연구팀은 지식경제부에서 4억8000만원을 지원 받아 첨단 가정용 적산열량계를 개발했다. 이 열량계는 주택에 공급되는 온수의 유량과 함께 유입 온수와 유출 온수가 보유하는 온도의 차이를 측정해 각 가정이 사용하는 열량을 정확히 잰다. 산업용으로만 사용돼온 200만원대의 대형 전자기식 유량계를 15만원 선으로 낮추기 위해 유량측정센서 등을 국산화시켰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가 계량계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설계부터 시작해야했다"며 "소형화에 나서면서도 계량계의 정밀도를 잃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이 적산열량계는 내구성이 우수해 수질이 좋지 않은 국내의 난방시설에 적합하고 가격도 기존 열량계와 큰 차이가 없다.

연구팀은 전국의 난방계량기가 적산열량계로 교체될 경우 연간 1000억원 정도의 난방 에너지 절감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박사는 "이번에 개발된 적산열량계를 사용해 난방비를 부과하면 공정하게 난방비를 부과하는 환경이 조성돼 각 가정마다 20% 정도의 난방에너지를 절약하게 될 것이다"며 "에너지관리공단과 함께 1000세대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중이다"고 말했다.

황경남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