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영국,브라질과 함께 오는 4월 런던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회의에서 의장국으로 활동하게 된다.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은 G7 선진국들처럼 경제력을 가지고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힘들다.

한국 입장에서 새로운 금융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은 창의적 아이디어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G20 국가를 분류하는 새로운 기준을 설정하는 데 있다. 지역적으로 아시아를 대표한다거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연결한다는 식의 진부한 기준만으로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다. 새로운 전략적 기준이 필요하다.

각국의 법률체제,즉 성문법 국가인가 불문법 국가인가가 전략적 기준이 될 수 있다. 법률체제에 따라 금융정책과 감독을 규율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G20국가를 법률체제에 따라 분류해 보자.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 인도 호주 등이 불문법 국가이고 한국 등 나머지는 성문법 국가다. 선진국 중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성문법 국가다.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불문법 국가임을 강조하면서 성문법국가와 불문법국가들 간의 규율체계 차이를 부각시키자.선진국들을 두 진영으로 가를 수 있는 핵심 포인트다. 선진국 대 개도국의 논쟁구도에 성문법국가 대 불문법국가의 구조를 첨가하는 것이다. 선진국 중에서도 우리 의견에 동조하는 국가가 많아지면 자연 우리나라의 운신 폭이 커질 것이다.

G20 논의 주제에 포함돼 있는 증권화 예를 보자.법률체제 관점에서 보면,증권화 문제는 증권화에 대한 별도의 법률을 갖고 있지 않은 불문법 국가에서 발생했다. 미국이 대표적 예다. 한국과 같이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을 보유한 국가에서는 과도한 증권화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 힘들다. 이 점을 부각시키면,증권화를 규율하는 효과적 방법은 증권화에 대한 구체적 법률을 갖추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G20 국가들 간에도 증권화 자체가 금융위기의 주범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 관심사는 어떻게 증권화를 체계적으로 규율하고 감독할 것인가에 집중돼 있다. 한국이 G20 논의에서 공헌할 수 있는 전략적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우리 법에는 누가 유동화를 할 수 있는지,어떤 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는지,어떤 절차를 따라야 하는지,어떤 내용을 공시해야 하는지가 법에 명확히 규정돼 있다. 특히 G20에 속한 개도국들은 증권화에 관한 한 한국 모델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

한걸음 더 나가면,증권화 규율체제 이슈는 현재 은행을 옥죄고 있는 신바젤협약과도 연결된다. 신바젤협약을 주도한 유럽 선진국들은 대부분 증권화에 대한 구체적 법률을 갖고 있지 않다. 별도의 법이 없으니 신바젤협약을 통해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경우가 다르다. 증권화를 규율하는 별도 법을 갖고 있는 국가에서는 신바젤협약 차원에서의 규제를 완화해 주자는 주장을 강력히 할 필요가 있다. 질량불변의 법칙처럼 규제총량 불변의 법칙을 적용하자는 데 그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한국이 주목해야할 또 다른 전략 포인트는 금융시장 개방정도에 따라 국가를 분류하는 것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인가,대규모 폐쇄경제인가,대규모 개방경제인가에 따라 금융규제의 틀을 짜는데 입장차이가 있다. 특히 위기의 근원지가 아니면서,금융위기 때마다 외국자본의 급격한 이탈로 외환위기를 경험하는 소규모 개방경제를 대변하는 논리를 개발하자.한국입장에서도 중요하고 다른 소규모 개방 국가들로부터 각광을 받을 것이다. G20 의장국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창의적 기준을 설정해 우리 의견에 동조하는 국가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