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이 정부로부터 전화를 받는 일이 잦아졌다. 보고서나 연구성과,연구원들의 칼럼 등에 대한 것이다. 민간 연구소도 예외는 아니다.

한 민간연구소는 얼마 전 언론사와 함께 여러 경제변수로 구성한 위험예측 모델로 위기신호를 제시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정부 관계자가 "그 모델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느냐,과장된 것 아니냐,위기를 조장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이 연구소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내부적으로 1% 이하로 봤지만 '재정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전망치를 그보다 1%포인트 정도 올려 발표했다.

금융연구원은 지난달 22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4%에서 1.7%로 낮췄다가 다음 날 전화를 받았다. "민간연구소도 아닌데 국내에서 가장 먼저 1%대 전망을 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외국계 금융사나 연구소들은 이미 1%대는 물론 마이너스 성장률까지 전망했던 시점이었다.

이에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18일 올해 경제전망 수정치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당초 전망치 3.3%를 1.2%로 낮추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만류해 발표시기를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만류한 것은 바로 이틀 전 발표한 2009년 경제운용방향에서 올해 성장률을 3%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발표 직후에 국책연구소인 KDI가 1.2%라는 수치를 내놓으면 '엇박자' 또는 'KDI조차 정부 성장률 목표 부정' 등으로 비판적인 기사가 나올까 우려했을 것이라는 게 연구소 관계자의 추측이다. KDI는 지난 21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7%로 더 낮춰 잡았다. KDI로서는 그 사이 악화된 상황을 더 잘 반영할 수 있었다는 데서 위안을 찾았을 법 하다. 신문 칼럼도 문제가 된다. 한 연구원은 칼럼에서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필요하다'는 논조로 글을 썼다가 "그러면 현 정부에 대해서는 시장의 신뢰가 없다는 말이냐"는 전화를 받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장관이 바뀌어도 연구원에 걸려오는 전화는 줄지 않았다. 연구원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앞으로 비판적인 보고서를 내려면 정직이나 감봉까지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고 우려할 정도다. 정부의 권위가 학자들의 자유로운 연구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 아닌가.

정재형 경제부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