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가 발생했던 지난 20일 오전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사건 원인 등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시위진압을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지시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은 우물쭈물하더니 아예 줄행랑을 쳐버린 것.

기자로부터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정부 고위 관계자는 "'윗선'의 지시가 있어 기자들 앞에 나서기는 했는데,상하 관계가 분명한 경찰공무원 속성상 상관을 흠집내는 말을 하기가 부담스럽지 않았겠느냐"는 해석을 내놨다. 공무원 특유의 보신주의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다음날인 21일 오전.서울시는 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25개 자치구 합동 창의행정추진회의를 갖고 "(용산사태를 계기로)세입자 대책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법체계 정비도 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반나절이 채 지나기 전 서울시 관련 실무부서는 "규정상 보상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은 상가세입자의 권리금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조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물론 서울시의 이 같은 신속한 입장 발표는 정치적 '쇼' 정도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시가 개선하겠다고 언급한 부분들은 법개정 사안으로,중앙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중앙정부가 협조해주지 않으면 서울시는 공수표만 날리고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그래서 "서울시는 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때문에 생색만 낼 수 있는 말을 쉽게 한다"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문제가 뭔지 정확하게 파악해 개선해보겠다'는 서울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책임회피와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비난을 자초하고 있는 중앙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동산 거래관행상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재개발 과정에서 전혀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가권리금 보상문제는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제도개선 방안을 연구는 해볼 것인지 등에 대해 정작 주무 부처인 국토부가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형만한 아우 없다'지만 최근 용산 참사와 관련해 발빠르게 대책을 내놓는 서울시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