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아침 서울 정동극장 관계자는 한 고객으로부터 문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정동거리와 종로 인근의 공연장이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공동마케팅을 한다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황급히 신문을 찾아보니 일부 언론에서 세종문화회관이 광화문과 종로,정동거리 인근의 공연장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공동마케팅을 펼치는 '한류문화벨트'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거기에 정동극장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 관계자가 확인해 본 결과 공연 마케팅 담당자는 물론이고 극장장조차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곳은 정동극장뿐만이 아니다. '한류문화벨트' 사업 안에 포함된 금호아트홀과 난타 전용관을 운영하는 PMC 프로덕션 관계자들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한류문화벨트'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지난 17일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무기한 공연에 들어간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개막 무대 자리에서였다. 이청승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이날 공연에 앞서 '한류문화벨트' 선포식을 갖고 다른 공연장과 협의 없이 일방적인 발표를 한 것이다. 토요일에 선포식을 한 탓에 문화벨트에 포함된 공연장 관계자들은 월요일에 출근해서야 언론을 통해 사업 내용을 알게 됐고 자신들의 의견을 낼 기회도 갖지 못했다.

이 사장이 발표한 '한류문화벨트' 사업의 내용은 더욱 황당했다. 그는 '한류문화벨트'에 내놓을 공연으로 넌버벌 퍼포먼스를 1순위로 꼽았다. 하지만 '난타''점프''사랑하면 춤을 춰라' 등의 넌버벌 퍼포먼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공연돼왔고 관객의 상당수가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게다가 전통문화공연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정동극장과 클래식 전문 무대로 자리잡은 금호아트홀에 억지로 넌버벌 퍼포먼스를 올릴 수도 없는 일이다.

환율이 올라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 요즘,공연장들이 힘을 모아 외국인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하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한류문화벨트' 사업은 이름만 그럴 듯할 뿐이지 새로운 공연장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것도 아니다. 한 공연장 관계자의 말대로 "이미 다 차려진 밥상에 수저만 놓는 형국"일 뿐이다.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전시 행정'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박신영 문화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