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17일 본지에 '포스코,CEO 승계 프로그램 만든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가자 포스코 관계자들로부터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그 중 상당수는 "요즘 같은 시기에…"라는 말로 시작됐다. 정부가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물갈이에 나서고 있는 판에 이런 기사가 나가면 '전문경영인이 임기를 연장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는 얘기였다. 실적이 좋은 CEO는 연임이나 3연임 등에 구애받지 않고 경영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틀을 만들기로 했다는 내용이 혹시 정부의 신경을 거스를까 우려하는 눈치였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하나의 기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포스코가 총선 직후 철강제품 값을 대폭 올릴 전망이라는 내용이었다. 항의의 초점은 '총선 직후'라는 문구에 모아졌다. "철강제품 가격 인상과 정치적 일정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 포스코는 사상 최대폭으로 철강제품 가격을 올렸다. 발표시점은 공교롭게도 총선 다음 날인 10일이었다. "광산업체와의 가격협상 시점과 우연히 맞아떨어졌을 뿐"이라는게 인상 발표 후 포스코가 내놓은 설명이었다.

작년 2월에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한 지방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1년부터 5년간 포스코 임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스톡옵션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 명예회장은 "임원 스톡옵션제는 '국민기업' 포스코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준 사건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스톡옵션이 논란을 빚던 때이긴 했지만,민영화된 기업의 경영 행위에 '국민기업'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석연치 않았다.

최근 이구택 포스코 회장의 조기 사임 발표로 포스코 내부 직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민영화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공기업'이나 '국민기업'이라는 명찰을 달아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다. 그러나 한 쪽에서는 "포스코가 외풍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비난이 나온다. "종종 알아서 공기업처럼 행동했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CEO 포럼'에서 "(정치권의) 외압으로 조기 사퇴하는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까. 포스코 일부 이사진이 최근 들어 다시 'CEO 승계 프로그램'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포스코는 여전히 '외풍'을 두려워하고 있다.

안재석 산업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