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 폐업 작년900곳 육박…한약 보험급여 확대 등 대책 부심

한방치료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면서 대학한방병원과 한의원의 환자가 급감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경기 하강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한방의료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자칫 생존마저 걱정해야 할 절박한 처지에 내몰릴 것으로 우려된다. 14일 한방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경희대 한방병원을 찾은 외래환자는 20만4248명으로 2003년(30만4844명)보다 33% 줄었다. 입원환자는 2003년 11만65명에서 지난해 6만9736명으로 37% 감소했다. 그나마 진료수입은 2002년 이후 7년째 정체상태에 있다. 환자 감소에도 불구하고 1인당 치료비가 상승한 까닭에 하루 평균(평일 기준) 1억2000만원 선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희의료원 내 한방분야 수입은 한방이 인기 절정이었던 2000년 전후엔 양방의 3분의 1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5분의 1 밑으로 떨어졌다. 비상 상황을 맞아 병원 측은 최근 한방 부활을 위한 비전선포식을 여는 등 타개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대학 한방병원도 마찬가지다. 병상 가동률이 경희대 한방병원만 90%를 넘을 뿐 원광대 동국대 등 대다수는 55~70% 수준이어서 원활한 병상 운영이 가능한 80%선을 밑돌고 있다.

일반 개원 한의원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전국에서 폐업한 한의원 수는 2004년 577곳에서 2006년 708곳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1월까지만 해도 823곳에 달했다.

3년 전 개원한 서울 목동의 A 학습장애 치료 전문 한의원은 어린이의 사상체질을 판정하고 그에 맞는 학습법과 뇌기능 촉진 또는 정신 안정 효과를 내는 한약을 처방해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 · 전단지 · 버스 광고 등에 매달 2000만원 이상을 쓰는 등 활발한 마케팅을 벌여왔다. 그러나 경기침체 여파로 2007년 하반기부터 적자가 대폭 커져 급기야 지난해 10월 원장과 부원장이 각각 10억원과 2억원의 채무를 분담키로 하고 권리금도 포기한 채 폐업신고를 냈다. 현재는 각자 다른 한의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방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B한의사(45)는 1997년 그동안 번 돈을 다 투자하고 은행 대출까지 받아 서울 역삼동에 2개층 300평 규모의 한의원을 차렸다. 1999년 이후 4년간 매출이 꾸준히 올라 투자금을 회수하는 듯했다. 하지만 2004년 이후 환자가 감소하자 규모를 1개층 150평으로 줄여야 했고 지금은 50평으로 옹색해졌다. 한의원이 한창 잘될 때만 해도 한 달에 80재(한재가 20첩)의 보약을 짓는 등 첩약에서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으나 지금은 첩약 매출이 월 1000만원 안팎에 그치고 있다. 직원 임금에 한약재값,월 500만원 하는 임대료를 내고 나면 적자다. 사정이 어려워지자 한의원을 정리하고 아내와 자녀들이 있는 필리핀으로 가 침구사로 개업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한의사협회 관계자는 "강남 한의원의 30%가 적자라는 소문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라며 "남들보다 뒤늦게 강남에 진출해 화려한 인테리어와 규모 확장에 거액을 쏟아부었거나 특정 질환 치료로 이름을 얻지 못한 경우 피해가 심하다"고 말했다. 한의학계는 환자 감소의 원인을 △40대 이전 세대들이 장노년층만큼 한방치료를 선호하지 않고 △농약 · 중금속 함유 및 간(肝) 손상 우려로 한약에 대한 불신감이 커진 데다 △1990년대 이후 한의대 신설 러시로 신규 배출 한의사 수가 늘어난 것에서 찾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의사협회는 양방에서 소홀히 하는 교통 · 산재사고 환자에 대한 한방물리치료를 건강보험에 편입시키는 데 성공,올해부터 연간 1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시장을 창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첩약의 보험급여화와 한의학에 대한 긍정적 인식 확산에 역량을 집중시킬 방침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