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균 <LS산전 대표이사&CEO jkkoo@lsis.biz>

새해다. 새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으레 1년의 계획을 설계하며 작은 소망을 가슴에 담곤 한다. 하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사상 유례없는 불황이 곧 현실화되리라는 공포감이 우리네 마음속을 엄습해 작은 소망이 설 자리마저 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막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진입하는 기분일세.벌써부터 숨이 막혀오면서 온몸의 힘이 빠진다네." 중소업체를 경영하는 지인이 최근 심경을 토로한 얘기다. 필자는 이처럼 공포감으로 인해 작은 소망마저 완전히 사라져 우리네 마음속이 '절망'과 '포기'로 가득 차지나 않을까 두렵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사상 유례없는 불황보다는 우리네 마음속 공포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필자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기본으로 돌아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 누구나 여러 가지 역할을 부여받으며 살아간다. 자식으로서,남편이나 아내로서,아버지나 어머니로서,학생이나 군인이나 기타 직업인으로서….

하지만 이처럼 개개인에게 부여된 다중(多重)의 역할 전부를 충실히 수행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자칫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소홀해질 수도 있으며,정치인의 경우 당원으로서의 역할에 치중하다 보면 국민의 심복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 비난 받는 경우도 있다. 역할과 책임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경우에도 제 역할을 다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기업에서도 부서 간,부문 간,직책에 대한 역할과 책임이 명료화되지 못해 효율성이 저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회는 각 개인,더 나아가 단체에 기대하는 역할과 책임이 원활히 수행될 때 질서가 유지되며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역할 기대의 이탈은 바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며,많든 적든 간에 사회적 제재가 따른다.

필자는 이러한 믿음으로 지난해 LS산전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하자마자 구성원 개개인뿐만 아니라 각 부문의 역할과 책임을 재정의해 제 역할 다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가장으로서도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가정의 날'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필자 역시 최고경영자로서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LS산전이 기업시민으로서 제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며,이것이 궁극적으로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연초,경제가 어렵지만 우직함과 성실함의 상징인 소처럼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다 보면 머지않아 밝은 빛이 있는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