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묵화(墨畵)'전문



전에 없이 모질고 힘겨울 것이라는 한 해가 시작됐다. 위기는 진행중이고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주름진 하루하루를 보듬으며 가는 길은 어둡고 냉랭하다. 가진 것 없어 노구를 이끌고 들판에 나서야 하는 할머니가 고단한 하루를 함께 보낸 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었다. 외롭고 적막한 생의 동반자에 대한 따스한 배려다. 내일 어떻게 되든 오늘 하루를 탈없이 보낸 것만 해도 큰 위안이니까. 이토록 남루한 삶이 한 폭의 묵화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은 그곳에 욕심도 투정도 없기 때문이다. 비극은 채우기 어려운 욕망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데서 비롯된다. 다다를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있는 대로 받아들여야 평온이 온다. 쓰리고 아플 때는 쓰리고 아파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쓰리고 아픈 시기다. 소 같은 진중함과 끈질김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가다 보면 빛이 보일 것이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